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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4일 일요일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통일교분열이라는 책은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충격일 수도 있겠다 싶네요.
하지만.
원리적이고 섭리적인 관점이 바로 서 있다면 그리 자신의 신앙을 흔들만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신의 참부모님에 대한 불신과 원리에 대한 무지와 섭리에 대한 무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혼란케하여 충격일 뿐 하나님의 섭리가 망할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좀 지나친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 참부모님의 섭리적 행보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아버님의 삶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2000년까지의 삶은 부서지고 파고되어진 것을 갖다 맞추고, 꿰어매고, 흙으로 벽을 붚이고. 깨진 시멘트로 다시금 정리하여 나름대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이상이었다하는 것이기에, 그러한 역사의 과정을 놓고 근본적인 하나님의 이상을 놓고 비교하고 비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섭리에 무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표현을 빌리자면,
참아버님은 지난 과거의 탕감이 삶은 떠올리고도 싶지않은 악몽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무지는 참아버님의 탄생하시면서 살아오신 삶이 간단히 말하면, 재림메시아의 삶이었다고 착각을 하고 있고, 그러한 바탕을 기준으로 해서 바라보기에 착각된 시각에서는 착각되어진 결과만이 나올 뿐입니다. 하나님이 참아버님의 살아오셨던 생애과 같은 삶을 살도록 재림메세아로서 이 땅에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러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참아버님의 삶은 원통함과 비참함과 서러움으로 가득 찬 한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가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참아버님의 삶이 원래적인 삶이었다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즉, 타락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생활이 그저 평범한 삶이라고 단정을 하고 하루하루 일어나는 삶에 충실한다고 하는 어불성설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삶이 하나님의 이상하시고 소원하시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이해를 할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전수된 혈통의 가치를 유지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합리화된 의례(보편화한 축복결혼식)를 개발해야 한다. 이 의례는 양보할 수 없는 종교적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보편적 가치를 담보하여 사회의례로 발전해 나가야 전 세계 모든 인류가 절대자 하나님의 혈통을 상속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내용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참부모님의 성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상하시는 결혼의 정의가 세워진 것이고, 그로 인하여 일반 세계에서의 결혼의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으로 한 것이고, 그 때부터 세상의 가정에 대한 도적적 결혼 가지관은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결혼가치관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재활성화 이후 통일운동의 조직은 중앙집권적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각 축복가정이 자발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독려하고 후원하는 자치 조직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천일국 시대의 섭리적 현실을 외면한 채 축복가정들을 통제해 온 통일교의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재활성화의 에너지는 곧 소멸하고 만다.
위의 말도 긍정을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체제는 왕권중심이었던 통일왕국시대와 같은 왕권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12지파의 체제로서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조직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조직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참부모님을 무형실체세계인 영적세계와 유형실체세계인 지상의 세계를 하나님과 참부모님이 만왕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지파를 피송하시어 세계를 통치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체제입니다. 그러기에 이미 참아버님은 성화하시기 전에 메시아의 사명, 구세주의 사명을 신종족메시아에게 일임을 하셨던 것이고, 신종족메시아는 단순한 종족의 메시아가 아닌, 하나님의 종족을 책임맡고 있는 神종족적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神종족적메시아는 하나님과 참부모님에 의해서 직접 지시를 받고 하나님의 종족을 복귀하고 교육하는데에 최선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창교자의 전통 안에서 보편적 가치와 상충하는 종파적 정체성을 넘어서야 한다. 특히 혈통복귀 신화로만 이해될 혈통의 종파적 개념을 훨씬 넘을 수 있는 혈통,’ ‘혈통복귀의 새로운 개념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천일국 주인으로서 유지해야 할 전통과 정체성은 가정맹세와 양심에 기초하여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책임분담을 통해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는 가정의 위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위의 내용도 지극히 타당한 내용입니다.
참부모님의 하나의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십니다.
어떠한 종교의 테두리에 계시는 분이 아니기에 위의 내용을 타당한 것입니다.
전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으로 복귀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삶을 살도록 하여 천일국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품안으로 데리고 가야하는 것이 참부모로서의 하나님 앞에 맹세한 내용입니다.  

재활성화를 위한 조직은 문현진의 'One Family Under God'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적인 정체성과 초종교적인 정체성을 지향하는 동시에 하나님혈통,’ ‘가정의 가치를 포함하는 종교성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종교적 요소가 종파적인 특수 교리로 합리화되어서는 안 된다.
위의 내용도 맞습니다.
종교적 정체성을 지향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증심한 신적인 가치관을 축복가정의 삶속에 실체화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초종교적인 정체성을 지향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기에, 참부모님의 손길이 세상의 모든 것에 관계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아버님은 사람을 죽이는 군복무만을 제외하고는 안해보신 것이 없는 메시아의 삶을 사신 것입니다. 혹자는 메시아가 왜 커피사업을 하시느냐고 의아해할 지는 모르지만, 메시아의 삶은 모든 인간의 삶에 얽혀져서 새롭게 하나님의 것으로 풀려져야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초종교적인 정체성은 종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학문, 문화, 정치, 경제, 예술, 농업, 해양들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활성화를 추구하는 조직이 경계해야 할 점은 현재 통일교가 재활성화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 전철을 결코 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통일교가 창교자의 사명과 이상 실현을 절대화한 것이 아니라 창교자와 그의 가정을 신격화하였고, 직업적 종교전문가들을 위한 관료주의에 빠졌으며, 건전한 재정 운영을 포기했을 뿐만이 아니라 종파적 혈통론에 빠진 채 1세와 2세를 차별했고, 종교적 약점과 심리를 이용하여 신앙자들을 착취해 왔던 죄악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위의 내용은 좀 다르지만 맞기도 합니다.
통일교의 과거의 역사는 부서진, 망가진 것을 폐허기 된 곳에서 재료를 다시금 긁어모아 집을 지은 것이기에 그것이 창조본연의 집이라고 보고는 싶지 않습니다. 부정을 하지는 않지만 본래의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부모님과 참가정을 신격화한 것은 그러한 폐허속에서의 진주와 같은 존재이기에 중요시 하다보니 신격화된 것 같은데,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1세와 2세를 종교적인 혈통으로 구분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1세와 2세를 구분하는 것은 섭리적인 면에 있어서 구분을 해 오셨던 것이지 단지 혈통적으로 구분하려고 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혈통에 대한 내용은 상당한 설명이 필요로 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의 섭리가 메시아가 오심으로 시작이 되는 것이고, 메시아가 오시기 위해서는 믿음의 기대와 실체의 기대기 세워져야하며,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세우는 주체는 부모인 1세였고, 실체의 기대를 세우는 주체는 2세인 자녀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시대 이후에는 부모와 자녀가 하나된 믿음의 기대와 실체의 기대를 동시에 세워왔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혈통에 대한 문제는 이해가 될 것입니다. 뭐, 1세는 타락한 혈통에서 복귀된 혈통이고, 2세는 순순한 혙통이라는 바보같은 착각은 하지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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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new
읽어보시고 얘기하실걸 그랬습니다.
이 책을 읽고 신앙이 흔들리는 책이 아니라 강화되는 책입니다.
축복가정들의 책임에 대해 다시 한 번 각성하게 되는 책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목 때문에 보지도 않고 오해부터 하네요.
 
 
19:22 new
님의 말대로
축복가정책임에 대해서 각성하게 되는 책이라면,
위의 본 글을 쓴 이는 축복가정에 대한 책임으로서의 표현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근데,
단지 몰랐던 것을 알았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지않나요?
 
20:12 new
읽어 보세요. 먹어보지도 않은 걸 갖고 떠들어봐야 소용없어요. 아니면 아구리 닫아요.
 
22:02 new
된장인지 똥인지 꼭 찍어 맛을 봐야 압니까?
모르는 님은 똥이나 먼저 찍어 드시죠!
그래야 된장 맛이 좋다는 것은 아니까~~~
된장 맛을 먼저 보고 똥맛을 보면 똥맛 탓에 된장맛은 기억도 안난답니다
 
 
19:37 new
참 불쌍타~~ 아직 멀었다~~피똥을 싸고 똥구녕이 찢어져도 상황파악이 어려울기다. 그냥 그대로 사세요~~
 
19:51 new
아직도 피죽만 먹고사냐!
불쌍한 중생아----
 
 
19:53 new
책을 읽어 보지 못할겁니다. 겁이나서요. 자신의 신념이 바뀌면 알바를 못할거니까요...
 
22:03 new
가랑잎 같은 인생이구만!
뭔 한권의 책에 신념이 바뀌냐~
그만큼 지금 갖고있는 신념이 없다는 거겠죠!
 
 
21:01 new
무슨 서평이 읽지도 않고 하는게 있습니까.
차라리 말을 마세요.
 
 
22:10 new
책을 쓴 저자인 김종석씨도 일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비평이기에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거나 틀리다거나 하는 것은 어쩔수 없습니다.

현실을 현실로 직시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 원리의 가름침이고,
현실을 바르게 알려면 원인의 세계를 통해서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 원리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김종석씨는 그러한 원인적인 면을 무시하고 현실적인 지식과 사실만을 갖고 현실의 모습을 비판하는 것은 똥묻은 개가 똥묻은 개를 비판하는 것과 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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