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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4일 금요일

똑똑하고 정의로운 사람을 스스로 떠나게 만들면서...섭리를 포기하려고 작정한 것 아닌가(신현준)

 2015.08.14. 19:58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7030                 

  
익명방에 올라오는 독생자 독생녀에 대한 해설 들은 어지간히 똑똑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글들이다.
그런 글들을 과연 누가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은 어떻게 저런 기막힌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가?
그런데 나는 왜 그런 논리가 이해가 되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가?
나에게 문제가 있는가?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들만 남아 있는가?
나 같이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들인가?

이마도 교회가 싫어서 떠난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닌 교회에 대해서 실망한 사람들로서 자신들의 기대에 교회가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떠났을 것이다.
 
교회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떠나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겠지만 섭리를 담당해야 하는 교회라면 섭리 때문에 교회에 들어왔던 사람들이 떠나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교회에 남아 있어서 죽어서 천국이나 가겠다는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 가서 말 한 마디도 못할 것인데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섭리를 감당하겠는가?
 
지금 여기서도 보면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과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 반박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머리속에 섭리는 없을 것이다.
 
지금 교회에는 이런 사람들만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교회는 섭리를 포기했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에 나가서 섭리를 이야기 하겠는가?
지금 여기 익명방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더라도 섭리에 대한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당초 섭리에 동참하기 위해 입교를 했던 사람들은 나름대로 똑똑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필요 없는 교회가 되어 버렸으니 소위 그렇게 입교했던 사람들은 스스로 걸어 나가게 만드는 것이 현재 통일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집안이 흥하기 위해서는 자손이 잘 나야 하는 것은 거론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집단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구성원들이 그 집단에 소속이 되어야 한다.
학교가 좋은 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학생들이 그 학교에 들어와야 한다.
국운이 융성하여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국가에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 것은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종교가 융성 발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종교 구성원이 똑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것을 왜 묻는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는 똑똑한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똑똑한 사람은 종교의 교리의 비합리에 대해서, 또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반기를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인은 똑똑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교회는 성격이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본래는 뚜렷했지만 지금은 애매모호해져 버렸다.
우리는 종교인인가 복귀섭리를 담당해야 할 섭리인인가의 구분이 모호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인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는 섭리도 모르고 헌금에 조건을 걸면서 죽으면 막연하게 천당을 가겠지 하는 사람들과,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사업이나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종교인인 척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종교인들과는 다르게 복귀섭리라는 절대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종교인으로서보다는 섭리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통일교인 들이다.
 
우리가 단순한 종교인으로만 살아가려면 통일교인은 똑똑할 필요가 없다.
똑똑하면 기성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섭리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상의 사람보다 더 훌륭하고 똑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똑똑한 사람들은 종교인으로서는 부적격자들이다.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불합리에 대해서 끊임없이 불평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귀섭리의 완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의 딜레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성종교의 한 분파처럼 되어 버린다면 구태여 똑똑한 사람을 전도할 필요가 없다.
똑똑한 사람을 전도하면 피곤해지기만 할 것이니...
그리고 똑똑한 사람은 아예 전도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보다 현명하지 못한 사람들을 가지고 어떻게 복귀섭리를 이끌어 가겠는가?
어떤 집안이라고 자손들이 똑똑한 자손들이 태어나는 것을 소망하고 똑똑한 자손이 태어나는 것을 큰 소망으로 여길 것이다.
자손이 똑똑하면 집안에 골치덩어리가 될까봐 똑똑하지 않은 자손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집안은 없을 것이다.
 
우리교회는 어느 편이 더 좋을까?
그저 그런 2세들과 그저 그런 세상 사람들이 전도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우리의 2세들이 똑똑한 2세들이 많아지는 것이 좋을까?
세상의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전도되는 것이 좋을까?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할 것이다.
똑똑한 2세들이 태어나야 하고 똑똑한 세상의 사람들이 전도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금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똑똑한 2세를 기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며 세상의 똑똑한 사람들을 전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고 정상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기웃거리기나 하겠는가?
우리가 애써 길렀던 사람들...
평화대사들은 세상에서 똑똑한 축에 들어가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지금 하나 둘 떠나가고 있지 않는가?
 
똑똑한 사람들은 종교의 조직을 피곤하게 한다.
그리고 결국은 종교의 질곡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교에서 중도하차 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그런 사람들이다.
 
우리가 종교가 전면에 나오게 되면 사람들은 떠나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섭리가 전면에 서게 되면 똑똑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있다.
우리가 평화대사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 때 섭리를 그들에게 내 밀었기 때문에
종교를 초월하여 우리의 손을 잡았던 것이 아닌가?
종교는 복귀섭리 때문에 생겨난 섭리의 보조수단이다.
종교가 섭리보다 앞에 나온다는 것은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된 것이다.
 
섭리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다 떠나게 만들고 죽어서 천당 가기만을 기다리는 자들만 남아지는 교회는 기성교회만도 못한 교회이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통일교인이 되었는지를 망각한 교인들과 섭리기관으로서 사명을 망각한 교회에 하나님이 함께 할 것이라고 믿는 배짱들은 어디서 생기는가?

 

 

댓글 2개:

  1. 아무것도 모르는 넘이 모든 걸 다 아는듯 쓰는 지진정한 또라이. 언제나 예외없이 토나오는 글을 배설하는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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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공감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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