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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9일 월요일

섭리에 대한 이해(12)...블루오션(Blue Ocean)의 개척은 가능한가?(뿅망치)

2015.06.29. 10:46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6412       

 
 
불루오션이라는 말은 그대로 직역하면 푸른 바다 이지만 사용되는 의미는 미개척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개척지라고 하면 인간이 발을 딛지 않은 땅이나 바다를 의미하기 보다는 어떤 분야에서 아직 개척되지 않은 분야이거나 경쟁이 거의 없는 분야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 말이 사용되어지는 곳은 경제 분야로 아직 시도된 적이 없는 광범위하고 깊은 잠재력을 가진 시장을 비유하는 표현하는 말이다.
 
위의 경우를 칼라TV를 파는 것으로 예를 든다면
첫 번째의 경우는 칼라TV 가 들어온 적이 없는 나라에 맨 처음 칼라TV를 파는 경우이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칼라TV를 그 나라 사람들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경쟁상대가 없는 상태에서 TV를 파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다.
 
두 번째의 경우는 이미 칼라TV가 팔리고 있는 나라이지만 자신들이 개발한 TV가 제품의 질이 좋기 때문에 그 나라에 들어가서 이미 기존에 팔리는 제품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재품과 경쟁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기술력으로 우위를 점하기 때문에 결국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경우이다.
 
세 번째의 경우는 자신들이 개발한 제품의 질이 기존의 제품보다 성능이 크게 우수하지 못해서 그 시장에 들어가더라도 경쟁력이 없거나 기존에 들어간 제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서 새로운 제품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거부되는 경우이다.
 
그러면 이 의미를 종교적인 분야에 적용하면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첫 번째의 경우와 가장 가까운 상황은 그 사회에 어떤 종교도 없었던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이미 기존의 종교의 색체를 걷어내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곧바로 자신들의 종교를 전달하고 정착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와 가까운 상황은 기존에 들어와 있는 종교가 자신들과의 색깔이 다르거나 자신들의 종교가 모든 면에 우위에 있어서 다른 종교와 경쟁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경쟁력의 우위로 인해서 자신들의 종교를 정착시킬 수 있는 경우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경우로 한 번도 그 사회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블루오션이 맞기는 맞는데 기존의 종교가 자리를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 종교에 충성하는 충성도가 대단히 높은 곳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종교가 그 종교에 비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블루오션에 들어가지도 못하거나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발을 붙일 수 없는 경우이다.
 
통일교회도 종교이기 때문에 세상의 종교가 맞이하는 세상의 법칙을 그대로 적용받게 될 것이다.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원리가 세상 안에 전파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원리가 전파되기 위해서는 위의 세 가지 상황이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첫 번째의 경우 세상 사람들이 원리(기독교)를 들어 본 적이 없고 원리 비슷한 것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경우에는 원리를 들고 세상에 들어가면 원리가 잘 받아들여질 것이다.
 
두 번째의 경우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이미 기독교와 접한 상태이고 신흥종교들의 교리들을 접하고 있으며 그런 종교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그 종교의 교리들과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경쟁을 해서 이길 수 있어야 원리가 전파될 수가 있을 것이다.
 
세 번째의 경우는 이미 기존의 종교에 익숙해져 있고 기존에 종교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기존의 종교가 확고하게 뿌리를 내려서 원리자체가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와, 또 한 가지의 경우는 원리자체가 교리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없는 경우이거나 조직이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는 경우이다.
 
지금 통일교회는 어디에 어느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여 어떤 전략으로 세상 안에 원리를 전파하고 정착시킬 수 있을까?
지금의 통일교는 세 번째의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리를 전파하지 못하면 뜻 곧 섭리는 이루어지기는 고사하고 뿌리도 내리지 못한다.
지금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말은 하지만 75억 인구 중에 겨우 5만 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 가지고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현재 통일교회의 주류는 자정기능이나 자가검증기능이나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그런 기능도 없고 능력들도 없다.
 
원리를 전파하기 위해서 필요한 현재 처한 자신들의 능력도 분석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들이 전해야 할 세상이 어떤 상황인지 분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분석을 한다고 해도 실상보다는 믿음의 보고라는 명목으로 거짓보고를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까지 그래왔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천일국을 외치고 2020비젼을 외치지만 그것은 통일교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그리고 통일교인들을 통제하고 희생을 강요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현재의 통일교를 가지고는 원리를 전파할 수도 없고 따라서 뜻을 이룰 수도 없다는 것은 귀가 막히고 눈이 먼 사람이 아니라면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는 그것이 가능한가?
원리를 세상에 전하고 원리가 세상에 뿌리를 내려서 뜻을 이룰 수 있는가?
 
통일교인들은 대체적으로 순진(현실적인 의미는 현명하지 못하다는 의미이다)하기 때문에 위에서 명령하는 말을 믿음(복종)이라는 것 때문에 그대로 믿는다.
아버님을 비롯해서 위에서 내리는 명령들은 블루오션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서 원리만 전하면 세상 사람들이 두 손을 들어 환영하고 받아들일 것처럼 말하지만 세상에 그런 곳은 없다.
 
그 전까지는 두 번째의 상황에 가까웠으나 지금은 마지막 상황과 같아서 원리자체를 들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원리나 뜻이나 섭리를 말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섭리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어서 자나 깨나 섭리를 생각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섭리를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 원리를 어떻게 전할 것이며 세상의 상황이 어떤 상황이며 더불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아직도 눈앞에 블루오션이 펼쳐져 있어서 원리만 전하면 그 사람들이 뜻 앞으로 모여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분명히 말하지만 통일교인들의 생각처럼 원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소위 블루오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도 그런 망상에 빠져 있다면 섭리를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려고 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통일교회의 주류는 잘못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서 다른 것을 찾지 못한다면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1:03 new
정말 똑똑한 후배나 2세가 나와서 섭리를 책임져야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 쓴 글을 참고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쓰는 글이다.

이 카페에 있는 사람들 말로는 섭리를 이야기하지만 사실 섭리에 무지하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미래를 두고 이야기 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준비를 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자신이나 전채를 두고.....


이런 글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15:21 new
님의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어서 몇자 적어봅니다.
가끔 보면
뜻 길의 앞날을 염려하는 의로운 님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님들은
뜻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2세 교육의 현실을 염려하며
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업이 무엇인가
아버지가 지금 우리에게 사자후를 토하신다면
지금 우리에게
사생결단 전력투구의 자세로
무엇을 실천 궁행라라 하실 것인가
그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하는 생활과 정성드리는 님들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런님들이 지도자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는
안타깝게도 아무런 힘이 없는 미천한 일개 식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랍니다.
우리세계야 말로 평신도의 소리는
 
15:34 new
평신도의 소리는 똥강아지 짓는 소리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현실이니 안타깝기만 하지요.

성군이었던 세종대왕도 대신들과 양반들만 데리고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장영실 같은 천민 도 뽑아서 썻고 힘없고 미천하게만 느껴지는 백성의 소리에 귀를 귀울인 까닭에 큰 정치를 펼수 있었지요

고금동서에 백성의 소리를 무시한 군주는 망국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겠지요.
아버님께서는 바른말 하는 선배들에게 가끔 호통을 치셨지만 그래도 식구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우리의 목회자나 지도자 중에는 의로운 식구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이가 없으니 어쩐다요~! 휴~~!

댓글 1개:

  1. 이 사람 무식한 글은 언제 멈출른지. 뿅망치라고? 나이값아나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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