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5년 4월 18일 토요일

삶의 결과가 해원식 하나로 바꾸어 져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2015.04.18. 17:02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5878       

   
익명방의 글을 보니 청평에서 한 조상해원은 잘못되었기 때문에 다시 해야한다 는 것과 시묘살이 정성에 동참해서 헌금을 하자는 글들이 있다.
참으로 할 말을 없게 만드는 내용들이 아닐 수 없다.
 
이제까지 속이고 속아 왔으면 충분한 것이 아닌가?
청평의 조상해원에 대해서 그것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정성을 드리고 조상해원도 하고 조상축복도 했지만 위로 조상축복의 대수(代數)가 7대에서 14대 21대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 했지만 그 이상이 시작되면서 조상해원을 포기해 버렸다.
 
지금 몇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조상을 축복하는지 알고 싶지도 않지만 210를 넘어서 그 이상까지 아직도 진행되고 있지나 않는지.....
우리 시조가 고려초기의 사람인데 내가 33대이다.
고려의 개국년도가 900년도(907~918) 초였으니 지금부터 1,100년 전이다.
구 자손들이 아무리 적어도 만 명은 넘을 것이니 몇 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중복이 되어 버린다.
이론적으로 맞지 않음에도 210대 이상까지 올라가면서 축복을 하는 것을 보면 축복을 감행하는 쪽도 뻔뻔하기 이를데 없고 거기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병신스럽기 그지없다.(이런 소리를 들어도 싼 사람들이다.)
 
우리는 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에 아무 생각 없이 동참을 하고 수용을 하는가?
대수가 올라가면서 의심을 하고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지만 아버님이 허락을 했다는 것 하나 때문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이 동참을 했다.
도가 넘는 청평의 영적역사를 허락한 것인지 묵인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청평의 영적역사는 통일교회가 몰락의 길을 걷는데 커다란 원인을 제공한 것은 틀림이 없다.
 
전에도 영적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을 한 적이 있었지만 다시 언급을 한다면 그 사람들은 대부분이 상식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맑은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높은 의식수준과 높은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어서 소위 이런 식의 영적역사를 하지 않는다.
불교의 고승(高僧)들이나 영적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부류의 영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특이한 성품을 가져서 보통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이거나, 인생에서 실패등 어떤 전환점을 맞이해서 영적세계에 관심을 가져서 영적능력을 얻게 되는 경우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편협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아예 상식자체가 부족하거나 하는 사람들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 능력으로 이 세상을 좌지우지(左之右之)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결국 우리에게 문제를 야기하는 사람들도 이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우리가 영계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영계의 협조가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영계의 협조는 지극히 제한적이며 실제 현실세계에서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미미하다.
어쩌면 협조로서 얻어지는 이익보다 그 부작용의 손해가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너무 영계 쪽에 관심이 없어도 안 되지만 그 쪽에 너무 관심을 가지게 되면 영계를 핑계로 나를 관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관을 당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그 누구도 대신 살 수도 없고 삶의 결과를 누구도 대신할 수가 없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더라도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 수도 없고 자식의 인생의 결과를 책임질 수도 없다.
그것은 자식이 부모의 인생을 책임질 수도 대신할 수도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부모를 비롯하여 조상들이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 죽었다면 그 후손이 그것을 책임질 수는 없다.
만약 책임지는 부분을 구태여 찾으라면 조상을 부끄럽지 하지 않는 삶을 살거나 조상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원리적으로 볼 때 조상해원이라는 것 사실 원리와 맞지 않는 내용이다.
지상에 있는 자손은 제2의 자신이기 때문에 자손이 원리적으로 살면 영계에 있는 조상도 그 혜택을 보게 된다는 것이 부활론의 내용이다.
 
그런데 어떻게 자손이 해원식 하나로 영계에 가 있는 조상의 위치를 바꾼단 말인가?
그렇다면 지상에 살았던 삶의 결과를 해원식 하나로 바꾸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꼭 축복식이나 해원식이 필요하다면(그런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영계에서 하면 될 것이지 지상에 있는 자손이 그것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조상 해원식이나 축복식에 대해서 언급되었을 때 처음에는 목회자들도 혼란스러워하고 비원리적이라고 주장을 했었다고 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되고 말았고, 지금도 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하고 까마득한 조상의 축복식을 보면서 협조를 하거나 묵인을 하고 있는 중이다.
 
논리와 원리를 떠나 비이성적인 행태의 영적역사를 계속하는 것에 대해서 결국은 다른 목적 때문이라는 것이 이제 알만한 사람은 알지만 아직도 일본이나 한국의 순진한 사람들은 그들의 속셈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과 자식들의 인생까지 저당잡히면서 살아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현실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해원식이 잘못되었으니 다시 해야 한다고 하고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부당하거나 비논리적이거나 비이성적인 것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길들여져 감히 그것에 대해서 거부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제는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수긍이 되지 않는다면 그 어느것도 수용할 필요가 없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수용하고 수긍하는 것은 신앙적인 태도가 아니다.
 
조상 해원을 하면 무엇이 자신에게 무엇이 달라지는가?
돈을 벌게 해 주는가?
머리를 좋게 해 주는가?건강을 주는가?
신앙생활을 잘하게 해 주는가?
사고를 예방해 주는가?
천국에 갈 때 마중을 나와 영접을 하는가?
 
이 세상에서 사람의 도리를 따르면서 선량하게 살아가는 것이 조상의 해원식이나 축복식을 시키는 것보다 더 조상을 위하는 길일 것이다.


 

댓글 2개:

  1. 옳은 말씀입니다. 한일축복가정이 많이 생기면서 한국의 신앙형태도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저 순종으로 따르는 것이 좋은 신앙이고 미덕인양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잘못된 신앙은 안하는 것만 못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신앙으로 인해 자유로운 판단과 정의로운 생각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대로 쓸데없는 집착과 독선 굴종 편견 불안 등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방 석방의 시대입니다.
    신앙이란 진리의 실재 자체를 스스로 꿰뚫어 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지, 조직이나 교리에서 주어지는 어느 특정 개념이나 교설 같은 것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답글삭제
  2.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모두 눈을뜨십시오
    귀를 여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세요
    그분의 진정한 바램이
    어디에 있는가를


    답글삭제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