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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3일 금요일

후배들은 우리처럼 살지 말고 보다 현명하게 살기를

2015.04.03. 03:05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5745       

   
 
한 때는 종교 곧 교회가 인생의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살아가는 목적이 교회와 뜻이라고 생각하여 교회와 뜻에 올인을 하며 살아간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다.
 
그 때 우리는 우리의 당대에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시작이라도 볼 줄 알고 있었고 지금이 이런 상황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인생을 걸고 그 길을 갈 수가 있었었다. 만약 오늘날과 같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과연 인생의 전부를 걸고 살아올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도 뜻을 위해서라면 또는 참부모, 참가정을 위해서라면 이 한목숨 다 바쳐서 충성을 하겠노라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순수한 열정이야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지만 과도한 열정은 자신과 자신이 책임져야 할 가족에게는 너무나 큰 희생이다.
 
꿈도 크고 화려했던 청춘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수고했던 장년도 지나고 이제 노인의 길에 들어서서 꿈같이 흘러간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게 될 때,
내가 선택한 길이 과연 최선의 길이었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 그 때는 그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항상 자신이 선택한 과거에 대해서 다행스러운 선택이었다는 비율보다는 잘못 선택했기 때문에 후회하는 비율이 더 크다. 아마 그것이 인생일 것이다.
만약 현재의 이성과 지성이면 그런 선택이 얼마나 무모한 선택인가를 알았을 것이고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성공과 실패가 나의 잘잘못과 상관이 없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들이 불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나의 잘잘못과는 상관없이 실패한 인생이 되어 버린 셈이다.
인생의 가장 빛나던 시절인 청춘과 장년의 시기를 투자했지만 그 결과를 정산(精算)한 결산서는 상처와 분노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왜 그 때 그 길을 선택했으며 지금까지 올인하면서 그 길을 걸어왔을까?
만약 단순한 신앙의 길이었다면 사실 그렇게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 길을 그렇게 갈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했을까?
다른 종교인들과는 다르게 별스럽게 걸어왔는가?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그 호소에 동참하려고 하는 열정 때문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기존의 세계를 무너뜨려야만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은 혁명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혁명의 길에 동참을 했기 때문에 혁명가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걸고 이 길을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혁명가의 길은 성공을 하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어서 소위 개국공신이 되겠지만 혁명이 실패하게 되면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혁명을 하려다가 성공하지 못한 실패한 모습으로 남아지게 된 것이며 그 결과 우리들의 인생도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만 셈이다.
혹자는 실패라는 단어가 맘에 들지 않아 시비를 걸고 싶겠지만 미래에 다시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모습은 실패한 모습이다.
 
나는 이 길을 걸어 올 때 신앙인으로서의 길을 걸어오기보다는 혁명가의 길을 택해서 걸어오기 위해서 이 길을 선택했었다.
신앙인의 길과 혁명가의 길이 무엇이 다른가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신앙인의 길은 보통의 종교인들이 걸어가는 그 길이다.
메시아를 만나서 축복을 받고 원죄를 청산 받아서 축복가정으로서 살아가면서 죄를 짓지 않고 영적성장에 힘쓰다가 영계에 가는 것이 신앙인의 길이다.
 
혁명가의 길은 신앙보다는 새로운 세계의 건설이라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개인의 구원이나 삶보다는 인류전체를 먼저 생각하고 그들을 먼저 걱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곧 섭리의 목적이 새로운 세계의 건설이고 그 결과는 전 인류의 행복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인류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삶이 혁명가의 삶이 되는 것이다.
나는 후자(後者)의 길을 택해서 걸어왔기 때문에 우리가 꿈꾸던 혁명이고 내가 꿈꾸던 혁명이 내 생애에서 좌절되었기 때문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앙인의 길은 가족들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인생의 모든 것을 걸 필요도 없다.
신앙생활은 별도로 할 필요가 없이 그냥 본심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 신앙이라는 이름을 별도로 붙여서 구태여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혁명가의 길은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통일교인들의 삶은 신앙인의 삶이라기보다는 혁명가의 삶이었었다.
신앙보다는 섭리가 먼저였기 때문이다.
섭리를 위해서 가족도 버려야 했고 친구도 버려야 했으며 많은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이 결국 가족에게 친척에게 또는 친지들과 같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로 남아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의 세대들은 우리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란다.
혁명, 그것이 뜻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지성과 이성이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후배들이 우리들처럼 희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종교와 교회는 지성과 이성과 양심이 부족한 사람들을 교육해서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교육기관 그 이상이 되어서도 안되고 그 이하가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천국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가는 것이고 영성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개발되는 것이며, 그것도 그렇게 별도로 애 쓸 필요가 없다.
그냥 선량하게 살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 필요도 없고 자신이 주인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주인이 되면 삿되고 허황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누구를 모시는 순간 그 사람은 그 모시는 대상의 종의 자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세대들은 우리와 같은 희생이 필요하지 않다.

 

   

 
03:40 new
다 옛날 얘기죠.
지금처럼 밝은 세상에 그런 천연기념물 같은 사람이 어디 있다는 건지요?
종교는 그저 살아가는데 이용할 도구중에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너무도 잘 알아서
종교장사가 안되는 것이 큰 문제라오.
무슨 장사든 잘 돼야 사회가 잘 돌아가거등요.
 
 
06:53 new
사랑합니다.
그렇게 섭리를 위해 혁명가로서 사신 삶에 존경을 표합니다.
설전을 펼치고 하루종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글들을 올리고 님도 마음이 무거우셨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선한 사람이 그리해야 한다면 더더욱.
며칠 간 공격 받고 혹시 고통스러우셨다면,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아버님께서 수없이 얼굴에 철판을 까셔야했던 고통을 조금은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그러실 수 있다면 머리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이 잘 나고 똑똑한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겠지요.
님을 사랑한 하나님과 아버님을 저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데이~
 
 
09:04 new
선배님들의 희생이 어찌 무의미하겠습니까? 역사에 이름없이 흔적없이 빛과 소금으로 어둠을 밝히고 사회를 이만치라도 건전하게 유지발전하는 것이 어찌 그냥되었겠습니까? 선배님 힘내세요. 아직 끝난 혁명이 아님니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요....
 
 
09:32 new
그러나 혁명은 새로운 새이나운 시대에 맞는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이나 앞으로 태어나는 세대는 소위 신인류들로 우리들과 다른 인류들입니다.
지금과 같은 올드한 방법이나 이론으로는 그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없고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혁명에 동참을 하고 싶거나 혁명의 주체가 되고 싶다면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10:25 new
선배님의 글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습니다.
저는 섭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부모님따라 나선길 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많은 갈등속에
번뇌하며 빈 들판을 쓸쓸히 걷는 중년의 여인이 모습이
안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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