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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4일 월요일

정신을 마비시키는 독이 든 음식을 삼키고 있지는 않는가?

정신을 마비시키는 독이 든 음식을 삼키고 있지는 않는가?


2013.11.03. 13:06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2730

 

 
 
지금은 평준화가 되어서 중교등학교도 우열(優劣)이 없어지고 학교 안에서도 우열반(優劣班)을 운영하지 못하게 하여 우열반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를 평준화 시키고 학교내에서도 우열반을 편성하지 못하게 한 것은 경쟁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람은 각각 지능도 다르며 특성도 달라서 지능과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방법의 교육은 우열반이나 경쟁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보다 더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하게 된다.
 
그 문제점들은 학생들의 실력이 하향평준화 하는 현상으로 국가경쟁력의 손실로 나타나게 되었고, 결국 공부를 하려고 하는 학생이나 공부를 시키려고 하는 학부모는 학교가 아닌 학원을 통한 교육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교육비를 증가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는 학교의 고유기능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포기하고 시험성적이나 관리하는 곳으로 역할이 변해 버린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그들, 곧 평준화의 혜택을 본 학생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시점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일자리는 한정 되어 있는데 그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많게 되면 경쟁은 치열해 질 수밖에 없다.
결국 최상위 몇 % 만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고 나머지는 시작부터 인생의 쓴 맛을 보는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경쟁없이 대학까지 나오게 된 그들은 가장 중요한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게 된 것이다.
대부분은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생존경쟁의 현장이 눈 앞에 닥쳤을 때 비로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공부했던 것의 몇 배의 노력을 해서 생존경쟁에 나서거나 아니면 생존경쟁에서 포기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다시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자들은 소수에 불과할 뿐 으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출발하지 못하고 패배의 쓴 맛을 안고 인생을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한다고 하여 인위적(人爲的)으로 그 경쟁을 지연시키게 되다가 보니 그 경쟁이 취업이라는 시점에서 병목현상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일자리가 무한정 있다면 경쟁이 없겠지만 이 세상에 그런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결국 자업자득(自業自得)이고 자승자박(自繩自縛)인 셈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경쟁을 통해서 성장을 하게 되면 경쟁에서 패배를 시인하는 그것에 승복하는 방법도 배울 것이고 공부가 자신의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다른 길을 찾아 갈 수도 있지만, 인생의 출발에서 경쟁에 패배하게 되면 그 상처는 말 할 수 없이 클 수밖에 없다.
 
결혼을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육아에 대한 부담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장을 제대로 가지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며, 이렇게 된 원인 중의 가장 큰 원인이 평준화라는 명목으로 생존경쟁의 장(場)을 인생의 출발점까지 미루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하여도 틀린 진단은 아닐 것이다.
 
경쟁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宿命)이며 경쟁을 인위적으로 미루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며 따라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게 되면 그 것에 대한 대가(代價)를 더 혹독하게 치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하향평준화와 관련하여 생각해보아야 하는 곳이 또 한 군데가 있는데 그 곳이 바로 종교분야이다.
종교의 목적이 우주를 알고 그 우주를 있게 한 신의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며 인간이 이 우주와 신의 존재 앞에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하는 것이 종교의 근본 존재 이유이다.  
그러나 종교가 출발할 당시에는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종교의 근본목적을 이해할 만한 지적수준이나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 환경 가운데 살지 못했다.
 
그래서 편법으로 사용되었던 방편(方便:불교용어로 사람의 지적능력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여 도를 깨닫게 수단)이 교리나 형식으로 고착화 되어 종교위 근본목적을 가로막게 되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 오늘날의 종교의 모습이다.
 
불교에서 염불을 외우게 한다든가 마니차를 돌리게 하여 조건을 세우게 하는 것이나 기독교에서 헌금이나 다른 봉사 같은 것으로 조건을 세우게 하는 것이다.
그 조건들을 세우기 하는 것은 도저히 종교의 본질에 접근하기 힘든 심성이나 지식, 또는 환경 속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적어도 죄는 짓지 말고 살도록 하기 위한 방편일 뿐 사실 종교의 본질적인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사실 그런 조건들을 세우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데 무슨 도움을 주겠는가?
오히려 그런 행위들은 조용히 명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방해하거나 그 시간을 빼앗게 되며, 조건을 세우는 것도 조건을 세웠다는 잘못된 위안이 자신을 나태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되는 것이 당근과 채찍의 방편으로 당근의 방편은 천국을 약속하는 것이고 채찍의 방편은 지옥에 대한 협박이다.
이 당근과 채찍의 방편의 목적은 종교에 관심이 없는 무지한 사람들을 종교 앞으로 이끌어 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천국의 약속과 지옥의 협박이 종교의 본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종교의 목적으로 둔갑해 버리는 것이다.
 
사실 천국이나 지옥이 있다면 사람은 죽게되면 반드시 둘 중의 하나를 가게 되어 있는 것으로 사실 종교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살아서 천국에 갈만한 삶을 살았으면 천국에 가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며 또한 지옥에 갈만한 삶을 산 사람은 지옥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어찌 한낱 종교에서 결정을 하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을 꼬이거나 협박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조건을 세우게 하는 것이나 천국이나 지옥을 가게 된다고 예고하는 것은 본래 종교의 목적도 아니고 기능도 아니다.
이런 것들은 최하위의 지식과 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죄는 짓지 말고 살기를 바라는 의미의 방편으로 사용하던 것이 종교의 목적이 되어 버렸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종교에 관심을 가지게 하거나 최소한의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파하게 될 것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이들은 하향평준화의 혜택 속에서 안일하게 살다가 사회인으로 출발하면서 처절한 패배감을 맛보는 학생들처럼 죽고나서 가는 세상이 있어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아마도 그런 낭패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과수원을 하는 농부가 과일의 맛있는 과일보다는 흠 없는 과일에만 신경을 쓴다면 그 과일은 결국 팔리지 않게 된다.
흠도 없고 맛도 좋으면 금상첨화겠지만 흠은 없는데 맛은 없다면 한 번 만 맛을 보면 그 과일을 다시는 사지 않는다.
그러나 설령 흠이 있더라도 맛이 있다면 흠 없고 맛없는 과일보다 더 잘 팔릴 것이다.
 
사람을 위에 든 과일에 비유한다면 죄 없는 사람은 흠 없는 과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요 흠이 없고 맛이 없는 과일은 죄는 없으나 인격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흠이 있더라도 맛있는 과일은 종교적으로 규정하는 죄가 있더라도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일은 흠 없고 맛있는 과일이겠지만 흠 없는 과일보다는 맛있는 과일이 당연히 더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흠 없고 맛없는 과일은 누구에서 선택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쓰레기통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맛없는 과일은 보기만 좋을 뿐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 중에 자신의 종교에 충실한(?)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종교의 본질적인 목적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인격의 성숙보다는 조건세우기와 죽음 이후의 결과에 집착을 하다가 보니 살아있는 동안의 삶이 왜곡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독선적이다.
 
이런 사람들은 온전한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융화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가족들과의 생활도 불가능한 사람들도 있게 되는 것이다.   
매스컴에서 발표되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종교인들의 행동이나 종교의 행태들이 본질과 수단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이다.

혹시 자신의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세상 사람들과 대화가 불가능하거나, 세상 사람들이 자신과 대화하는 것을 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을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신앙이 좋아서가 아니라 종교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수단을 목적으로 잘못알고 있는 경우라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을 때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사후에 천국에서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살아서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사양을 할 것이며 그 이유는 흠은 없으나 안 익어서 맛이 없는 과일과 같은 존재로 인격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천국은 죄 없는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성숙된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죄 없이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숙된 인간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향평준화는 학생들을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 학생들에 치명적인 독(毒)이 되는 것처럼 종교인들에게 조건 세우기 등과 같은 방편(方便)을 본질보다 앞세우는 것 또한 신앙생활을 쉽게 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이 든 음식을 먹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
 
본질을 생각해 보기보다 조건을 세우는데 관심이 가지는가?
그렇다면 그는 스스로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있는 중인 것이다
 
 

   

 
13.11.03. 19:27 new
가짜 종교꾼들은 종파를 넘어서서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신현준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오강남 교수님 말씀처럼 '종교는 깨달음입니다'
저는 종교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문화 곧 '위하여 사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도구.
교회는 죽을 때까지 나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어서어서 교회를 졸업하여 이웃과 사회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스스로 빛을 발하며 가꾸게 돕는 곳이라고 봅니다.
결국 아버님 말씀처럼 마지막 세계는 '예술의 세계'가 되겠지요.
사랑과 자유와 조화와 기쁨과 신비함이 만나고 조합되는 멋진 세계 말입니다.
도는 사랑길입니다.
중도는 사랑입니다.
 
13.11.03. 19:34 new
사랑은 최고의 선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없어보이지만 꽉 찬 그것.
앞도 뒤도 左도 右도 無도 有도 아닌 그것.
조물주가 가진 최고의 보물인 그것.
 
13.11.03. 19:57 new
댓글 중 최고!!!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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