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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4일 토요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13.08.24. 01:43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1974


 
영원이라는 시간은 얼마나 긴 시간이 되는가?
영원이라는 단어의 뜻을 다 알고 있겠지만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의미는
존재나 가치가 시공을 초월하여 끝없이 지속되거나 변함이 없다,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짐 이라고 되어 있다.
 
영원이라는 단어에는 시간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러나 영원이라는 시간은 인간의 상상력 속에 존재하는 시간이다.
설령 그 시간이 실재로 존재하는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나와 관련이 있는 시간은 고작 100년을 초과하지 못할 것이며 그 나머지의 시간은 사실 나와 상관이 없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영원이라는 시간의 개념은 나에게는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영원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그 단어를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인간이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을 육신으로만 본다면 100년이라는 시간을 초월하지 못하지만 영혼이라는 존재를 인정한다면 인간이 영원이라는 단어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간들이 영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고 가장 좋아하는 말이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이다.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엄청난 사기죄(?)에 해당할 것이다.
100년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영원히 사랑한다고 거짓말을 했으니...
사람은 참으로 모순된 생각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영원히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나 그 말을 듣는 사람이나 그 말을 진실인 것처럼 믿는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100년을 살더라도 부부가 같이 사는 기간은 50년을 넘기기가 힘들며 특히 요즈음처럼 이혼이 대세(大勢)인 현대에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시련의 시기를 겪으면서 살아간다.
그런 시련이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과정을 겪는다.
그런 시련의 과정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격려해 주는 말이 ‘이 또한 지나라리라’
라는 글귀이다.
 
이 글귀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다윗왕의 반지와 무덤에 새겨진 글귀이다.
다윗왕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공장이에게 반지를 만들라고 명하면서 내가 승리의 기쁨에 도취하여 자만에 빠지거나, 패배의 슬픔에 좌절하거나 절망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그런 글귀를 반지에 새기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고민하던 세공장이가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에게 부탁을 하여 솔로몬이 숙고한 끝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글귀를 주었다.
 
그 의미는 지금의 이 기쁨과 행복도 곧 지나갈 것이며, 지금의 이 슬픔과 고통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다. 라는 의미라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우주를 생각하고 영원이라는 시간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어려운 기간을 더 슬기롭게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영원한 시간 앞에서 인생은 불교에서 말하는 찰라와 같은 시간일 것이며 그 시간 안에서의 기쁨과 슬픔도 순식간에 지나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구나 차멀미 같은 것을 해 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더라도 참고 목적지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면 견디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을 아는 사람의 고통과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을 모르는 사람의 고통의 강도는 같겠지만 고통의 시간이 언제 끝나는지를 아는 사람이 그 고통을 더 쉽게 견딜 것이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07년도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베이스켐프(ABC)에 갔을 때 마지막 코스에서 고산증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있었다.
고산증 증세는 멀미와 비슷하지만 더 고통스럽다. 새벽에 마차후차레 베이스켐프에서 출발하여 안나푸르나베이스켐프까지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두 시간으로 고산증 증세를 겪고 있던 나에게 고도를 높이며 올라가는 그 두 시간은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그 때 마음속으로 지금 두 시간 후에는 나는 거기에 가 있을 것이며,거기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볼 것이며, 이 고통도 끝이나 있을 것이다 라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면서 그 두 시간을 참고 올라갔었다.
만약 그 때 걸리는 시간을 알 수 없었더라면 그 고통은 가중되었을 것이고 중간에 포기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자들이 군대의 어려움을 견뎌내는 것도 자신이 제대를 하는 날짜를 알기 때문에 어려움을 견디는 것과 같다.
 
다 아는 이런 이야기들을 시시하게 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경험이 자신의 어려움을 견디는 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에 몰입하기 쉬운 사람들이나 다른 것에 쉽게 몰입하는 사람들은 사고의 폭이 좁기 때문에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우주를 생각하거나 인생을 생각하는 그런 여유를 가지기가 어렵다.
자신이 몰입하는 그 분야가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볼 줄을 모른다.
이런 사람일수록 시야가 좁기 때문에 폭이 넓은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자신의 세상 말고 또 다른 세상이 무수하게 많다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통일교회에 몸을 담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도 자신이 걸어온 그 곳이 인생의 전부이고 세상의 전부이며 그 이외의 다른 세상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다행이 자신이 선택했던 그 길이 처음에 생각했던 그 꿈대로 이루어진다면야 더 할 나위가 없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아무리 변명을 하고 부정을 하여도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처음부터 적당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상실감이 없겠지만 소위 올인을 한 사람들이 맞이하는 상실감은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밖에 나가서 밤하늘의 별을 한 번 보고 영원이라는 시간을 생각하면서 다윗왕의 반지에 새겨진 그 글귀를 한 번 기억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신앙의 문화와 전통 속에 함몰되어 우리밖의 세상을 볼 줄도 몰랐고 볼 수도 없었다.
 
이제 객관적인 입장에서 우리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자신들에게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이 상황이나 자신의 인생을 영원이라는 시간의 틀 안에서 한 번 생각해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만약 좌절감이나 패배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종교에 함몰된 삶을 살면서 갱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생각하게 될 것이고 의외로 생각디조 않았던 많을 것들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래 글은 랜터 윌슨 스미스라는 사람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글귀를 가지고 지은 시이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끝 없는 힘든 일들이
네 감사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
기도하기에도 너무 지칠 때면 이 진실의 말로 하여금
네 마음에서 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힘겨운 하루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게 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너에게 미소 짓고
하루 하루가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근심 걱정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의 기쁨에 젖어 안식하지 않도록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 가슴에 품어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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