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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7일 수요일

기라성 같은 선배들은 이디로 사라지고....

기라성 같은 선배들은 이디로 사라지고....

2013.08.06. 21:38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1758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신앙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똑똑한 사람은 결국 신앙을 하지 못하고 떠난다고 말하곤 한다.
신앙이라는 단어의 한문은 믿을 신(信)자와 우러를(따를) 앙(仰)자이다. 말 그대로 믿고 우러러보며 따른다는 것이다.
믿는다는 한문의 의미가 신앙의 맹목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말로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똑똑한 사람이 신앙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앙의 본질인 이성적인 판단을 배제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되니 결국 신앙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떠나는 사람의 믿음이 없음을 손가락질 하면서 자신들의 믿음이 굳건한 것에 대해서 자위(自慰)를 하고 자랑스러워 한다.

통일교회에도 기라성(綺羅星) 같은 선배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았으나 끝까지 함깨 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 갔다.
우리는 그들을 역시 똑똑한 사람들은 신앙을 하지 못하는구나 하면서 굳건히 남아 있는 자신을 자랑스러워 했었다.
그들이 이곳을 떠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과의 괴리 때문에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지금에 와서 이해하게 되었다.

초창기에 입교한 사람들은 세상사람들을 리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었다는 것은 조금만 오래된 식구라면 다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60대에 들어서서 교회에서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학창시절에 나름대로 공부를 잘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름대로 세상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교회에 입교하게 된 이유는 신앙 때문에 교회에 들어온 것이 아니고 섭리 때문에 입교를 하였던 사람들로서 체질적으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었다.

초창기에 입교를 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명석한 지능과 의로운 마음을 같이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입교를 하게된 것은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먼저 뜻 앞에 불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믿고 천당을 가기 위한 하챦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 뜻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 수 있는 의협심도 있었고 천하를 뒤집어 엎을 수 있는 신념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교회를 떠나는 것을 개인의 신앙의 문제로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섭리의 일꾼이 떠나간다고 생각하면
교회는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섭리의 주인인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손실이 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였을 것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뜻 앞에 충성을 하던 똑똑한 식구가 떠나가면 그 사람의 신앙을 비난하면서 손가락질을 하기에 바빴을 뿐 섭리의 일꾼이 떠나가서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섭리의 주인의 입장에 서 있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동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신앙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 어찌하여 매정하게 무거운 짐을 우리게만 맡기고 그렇게 떠날 수가 있는가고 원망하였다.
하나님이 섭리의 주인임을 안다면 설령 아버님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더라도 섭리를 손에서 완전히 놔버리면 안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신앙때문이 아니라 섭리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신앙을 하기 위해서 통일교회에 입교한 적이 없다.
신앙은 복귀섭리에 동참을 하게 되면 저절로 하게 되는 것으로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지 신앙이 우선이 되거나 주된 목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생각이다. 
그래서 통일교인으로 섭리인으로서의 책임을 이야기하지 않고 신앙을 앞세우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이 필요한 것은 자기 완성의 목적 때문이므로 자기완성은 아버님이나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성인이 되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위에서 언급했지만 초창기에 교회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지능적으로 우수하고 의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서 신앙을 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섭리보다 신앙이 강조되고 섭리의 실현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그들은 꿈을 접고 떠나가 버렸다. 
지금에 와서는 그런 현상이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명한 그리고 세상을 리드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떠나가 버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앙이 목적이 되어버린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하나님이 메시아를 세운 목적이 세상사람들 축복이나 시켜주라고 찾아 세운 것이 아니고 섭리룰 책임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라고 세웠을 것이다.
하나님이 통일교회를 만든 목적도 신앙인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섭리의 일꾼으로 교육하기 위한 섭리의 기관으로 세웠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통일교인들을 찾아 세운 목적도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을 바라서 찾아 세웠던 것이 아니고 섭리를 책임지라고 찾아 세운 것이리라.. 

유능한 선배들이 교회를 떠난 것은 자신이 섭리인으로서의 설자리가 없어지고 맹목적인 신앙인으로 남아지는 것이 싫어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자신이 초창기와 지금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본다면 섭리인의 모습보다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남아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는 아버님이 인류의 참부모로 신앙의 중심의 모습으로만 남아있고 섭리를 책임져야 할 책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메시아의 사명은 구주의 사명보다는 복귀섭리의 책임자로서의 사명이 더 막중하다는 것을 알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섭리의 주인은 아버님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섭리의 주인이 아버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만약 아버님이 섭리의 주인이라면 아버님이 실패하면 섭리는 영원히 실패하게 되고 만다는 것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기성교회의 맹목적인 신앙을 비난하고 식구들의 맹목적인 신앙을 비난하면서도 자신이 맹목적인 신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신앙이 강조되는 종교는 이론적으로나 다른 어떤 것으로든 문제가 많은 종교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맹목적인 복종을 강조하는 종교는 더욱 그러하다.

통일교인들은 원천적으로 맹목적인 신앙을 해서는 안되는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여러분들도 전에는 그러했었다.
교회를 떠나간 그들과 마찬가지로....

                                  

13.08.06. 22:11 new
깊이 생각해 보니 섭리의 주인이 아버님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라 생각된다. 우리교회 목회자는 아니라고 하지만...
 
 
13.08.06. 22:44 new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니
한심한. 것입니다. 진정. 부자의관계처럼
느껴진다면. 못난부모라도. 버리고
떠날수 없는것입니다 그동안 많은것을
가르침을받고. 배웠는데. 좀. 안다고
배은망덕하다니. 성년이 되었으면 대신
앞장서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데
제대로 성장도 못했으면서. 욕심만
꽉차서. 아는척하니 변덕을 부릴수밖에
제대로. 자신을 전도했다면 겸허한
자세로 실적을. 올리고도 더못해서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자라야
하늘이. 그심정을보고. 과연 내아들아
내딸아 부르면서 영원히. 함께하실것
입니다. 그런사람 많이 봤습니다
알고보면. 똑똑하긴 똑똑한데. 헛 똑똑
이지요.
 
 
06:05 new
하늘의 별만큼 많았다구요~?
우메, 진짜요~?
땡! 시적 표현도 너무 과장되면 안되지요.
섭리를 담당하는 일꾼이 결론이라구요?
우메, 진짜루~?
섭리의 일꾼은 과정일 뿐.
종의 종에서 시작되는...
신앙의 결론은 그리고 통일교회를 세우신 분의 결론은 '성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것입니다.
섭리의 중심은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아들과 딸이 없으면 고통스럽습니다.
더구나 있었는데 잃어버린 아들 딸이면,
나쁜 놈의 유혹에 빠져 앵벌이 땡벌이하며 살고 있다면...
섭리를 위하여사신다구요?
아들 딸의 모습으로 변하면 됩니다.
우리 모두가
인류와
천주의 모든 존재들이...
대회하고 식을 여는 조건들은
 
05:52 new
종의 종들이나
종들을 위한 섭리입니다.
양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어리숙하지만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하기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며 사는지...
진정한 양자가 되어 서자로 올라가는 겁니다.
서자는 어머니가 다른 아들입니다.
진정한 서자가 되면 적자의 자리로 올라갑니다.
거기에서부터 '참부모'가 설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거치고 아버지를 거쳐 비로서 하나님의 아들 딸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가르침을 따르십시오. 종의 종도 종 아래 고개를 숙여 발길질, 주먹질 당해도 배웁니다.
신앙단체에서 똑똑한 이는 그런 사람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8단계 과정을 매듭지으며 하나님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
 
06:04 new
신현준님은 솔직하고 용기있으신 분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마음 밭을 보고 자갈들을 골라내고
가시덤불들을 불태워 버리는 우리들의 하루입니다.
스님들의 참선도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진리의 씨를 많이 뿌려도
마음 밭이 사막처럼 황량하면 싹이 트지 못하고 그냥 말라 죽습니다.
혹 우기를 맞아 싹이 튼다해도 열매를 맺지못하고 죽지요.

언젠가 텔레비전을 보니 우기동안 잠시 싹을 틔우고 빨리 꽃을 피워 열매를 가진후
건기동안 사막을 굴러다니는 가시덤불을 보았습니다.
그러다 우기가 오면 비가 열매를 때려 땅에 떨어져 번식을 한다는군요.
살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사막이라해도 열매 맺을 수 있는 희망 있음다
 
 
09:36 new
댓글 단 분은 신앙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고 나는 신앙보다는 섭리에 관심이 있고...
그런 차이 같습니다.
 
 
09:52 new
신앙과 섭리는 상치되거나 상반된 용어가 아닙니다. 신앙이 이성을 포기하고 맹목적인 것이라는 정의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참된 신앙과 거짓된 신앙의 차이를 이야기 해야 합니다. 이성을 포기한 신앙은 맹목적 신앙이고, 이성과 진리에 기초한 신앙은 참된 신앙입니다. 신앙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가 올바른 물음이 아니라, 잘못된 신앙을 해서는 올바른 인격도 성숙시킬 수 없고, 인생을 성공할 수도 없다는 것이 올바른 정의입니다. 한문으로 신앙이지만, 영어로는 신앙인이 man of faith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실천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상태입니다. 올바른 믿음이 있으면 올바른 실천이 가능합니다.
 
09:49 new
반대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잘못된 실천을 하게 됩니다. 역사는 올바른 믿음을 가진 자들의 실천에 의해서 변화하고 발전한 것입니다. 루터가 그렇고, 아브라함 링컨, 마르틴루터, 간디가 그렇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올바른 믿음으로 식구들을 이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믿음은 믿음이 없는 것만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주인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줄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가정맹세의 모든 구절에 '천일국 주인 우리가정은'이라는 표현을 넣으신 의미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09:51 new
다른 교회에서는 신앙이 목적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에서는 신앙이 주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섭리에 성심성의껏 동참을 하다가 보면 어느 새 자신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있을 것입니다.
본래 신앙을 하는 목적은 기성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닮는 것일 것이고
통일교회에서는 아버님을 닮는 것일 것입니다.
본받고 닮는 목적은 결국 하나님과 같은 기준의 심정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섭리를 제사라고 하면 신앙은 잿밥과 같은 것으로 젯밥을 얻어 먹기 위해서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에 참여하면 젯밥이 저절로 생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을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 같은 심정을 소유할 수 있지요
 
10:00 new
신앙은 물론 목적이 아닙니다. 신앙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이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실존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구분점을 신앙으로 보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내가 만질수도 볼 수도 없는 하나님을 살아 계신 분으로 인정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영역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고, 그 하나님의 뜻이 나의 인생과 창조하신 우주에 있다고 하는 것은 깨닫는 것은 나의 삶에 믿음의 결단을 촉구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지식과 신념의 차이라고 봅니다. 지식은 유약합니다. 갈릴레오는 지구는 둥글다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에 목숨을 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달랐습니다.
 
10:05 new
자기가 추구하는 것에 인생 전체와 목숨까지 걸 수 있는 것은 신념, 즉 어떤 믿음의 상태입니다. 세상은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발전되고 있는 것입니다. 빌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도 돈을 목적으로, 또는 어떤 지위와 명예가 삶의 동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어떤 면에서 변화시키겠다는 믿음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방향으로 가다보니 부와 명예가 결과적으로 따라온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목적으로 나아가다 보면 부와 명예는 따라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2세들이 지금 세상에 나아갔는데, 과연 먹고 사는 것 해결하는 것 외에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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