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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9일 금요일

워싱턴 타임즈 문제 종합보고서

워싱턴 타임즈 문제 종합보고서
 

워싱턴 타임즈 문제 종합 보고서
- 워싱턴 타임즈는 공산당으로부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께 돌려드린 것 -

2012 11 7

1. 서론
 
2009 8월경, UCI로 매달 들어오던 일본교회 송금이 갑자기 중단되었다. 보내진 자금 대부분은 워싱턴 타임즈를 비롯한 언론사업을 위해 기부되던 것이었다. 이후 송금은 완전히 멈춰버렸고, 워싱턴 타임즈는 부도와 폐간위기로 내몰렸다. UCI는 차입 등 자체적인 운영자금 조달과 비상경영을 통해 약 1년간을 버텨냈다. 그리고 한계상황에 직면하자 UCI는 워싱턴 타임즈를 매각 또는 폐간하기보다는 교회가 별도로 세운 뉴스 월드 미디어 디벨롭먼트(NWMD) 사로 인계하기 위한 교섭을 진행하였고, 2010 11 1, 1달러라고 하는 상징적인 매각가격으로 워싱턴 타임즈를 NWMD에 인계하였다. 협상이 최종 타결되자 문현진 회장(이하 문회장)은 사적인 자리에서 워싱턴 타임즈를 참아버님께 돌려드렸다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참아버님은 여러 차례 섭리적인 공식행사를 통해 워싱턴 타임즈를 공산당으로부터 되찾아 왔다고 발표하였다. 과연 누구의 말이 사실인가?
 
의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워싱턴 타임즈는 섭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반이었기 때문에 27년간 재정지원이 끊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언론사 기반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데도 왜 갑자기 지원이 중단되었는가? 중단지시를 누가 내린 것인가?
워싱턴 타임즈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지만, 한 번 무너져 내린 기반은 다시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 워싱턴 타임즈 위기가 발생한 지 3년 반이 지났고, 신문사 경영권이 UCI에서 NWMD로 넘어간 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동안 잘못 알려진 내용과 감춰진 진실들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는 2009 4월경 워싱턴 타임즈의 경영위기가 발생한 이후 2010 11 1달러에 인계되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하고 분석한 것이다.
2. 워싱턴 타임즈에 대한 섭리적인 이해
 
UCI는 워싱턴 타임즈가 폐간 직전 상황까지 몰리자, 마지막 순간을 대비하기 위해 2010 8 20일 자로 <워싱턴 타임즈 창시자와 지지자들께 드리는 워싱턴 타임즈 고별사>를 준비하였다. UCI는 이 고별사를 통해 워싱턴 타임즈의 섭리적인 책임과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워싱턴 타임즈는 인류를 구원하는 평화의 사도였으며, 하나님 중심의 가치를 세계에 전하는 메신저였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남북한의 분단으로 시작된 냉전시대에, 인류는 국제 공산주의의 세계적인 공세 앞에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에 문선명 총재께서는 하나님주의 두익사상을 바탕으로 승공이론을 정립하시고 자유진영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승공전선을 형성하셨습니다. 또한 투쟁적인 변증법적 유물론과 좌익사상에 전염된 자유진영의 지식인과 언론을 정화하시고, 사상전에서 승리하시기 위하여 자유진영의 심장부 미국의 수도에서 1982 5 17일 워싱턴 타임즈를 창간하셨습니다.
 
문총재는 워싱턴 타임즈와 더불어 자유진영의 지도자들로 세계적인 대소련 봉쇄 전선을 구축하셨습니다. 그들의 정책을 지원하고, 1990 4월 소련에 입성하여 세계대회를 개최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냉전시대의 대결에서 승리하시고 공산주의의 폭력과 핵전쟁에 의한 멸망의 공포로부터 인류를 해방하는데 앞장서셨습니다.
 
냉전시대 이후, 성 해방과 성 평등을 부르짖는 세속적 인본주의의 탈을 쓰고 등장한 음란 문화에 의해 세계적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인류는 이들 문화와 상품들에 심취하여 영혼이 썩어가고, 존립의 근본이 위태로워지고 있음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워싱턴 타임즈는 하나님의 가치를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전개된 순결과 참가정 운동을 지원하였습니다. 인류가 종교 인종 민족 국가 이념을 초월하여 순결을 맹세하고 선한 가정을 실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길을 밝혔습니다.
 
UN은 인류의 평등과 평화를 맞이하기 위해 하늘이 준비한 통치기구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UN은 국제공산주의와 자국 이기주의가 활동하는 국제기구로 전락하여 새로운 글로벌 가버넌스 시대를 열어야 하는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워싱턴 타임즈는 미국은 물론 UN을 각성시켜 하나님의 가치를 중심한 아벨적인 UN에 이르는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워싱턴 타임즈는 하늘과 영육계의 인류가 소망해 왔던 평화이상이 실현되는 현장의 소식을 전세계에 전하는 전언자 메신저로서의 소임을 다해 왔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의인의 정성과 헌신 봉사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의로운 지도자들에게 워싱턴 타임즈는 자유 평등 평화 행복 해방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워싱턴 타임즈는 “미국의 신문”으로서 자유, 가정, 신앙을 지키는 사명에 전력을 다했으며..."
 
위에 소개된 고별사는 한 신문사의 장엄한 최후를 고하는 유서와도 같은 것이었다. 무려 1조 원 이상이 이 신문사 하나를 위해 투입되었지만, 워싱턴 타임즈가 이룩한 섭리적인 공헌에 비하면 아깝지 않은 것이요, 워싱턴 타임즈는 하나님의 섭리와 통일가의 자부심이었다.
 
3. 워싱턴 타임즈와 문현진 회장과의 인연
 
2001 1 13일 참부모님을 중심하고 하나님 왕권즉위식이 거행됨에 따라 천일국 시대가 활짝 열렸다. 2013 1 13일까지 섭리의 로드맵을 완성하신 참아버님은 문회장에게 이 시대의 가장 선두에서 2세들과 더불어 앞장서 나갈 것을 기대하셨고, 참부모님 탄신일 다음날인 1 30, 40세 이하의 교육 및 인사권을 문회장에게 이양하셨다. 그리고 약 한 달 뒤에 참부모님께서 문회장을 세계평화청년연합 세계회장에 임명하여 2 25일에 뉴욕 벨베디아 수련소에서 취임식이 개최되었고, 이날을 기해 48세 이하 모든 지도자에 대한 권한까지 문회장에게 위임되었다. 문회장이 48세 이하 지도자를 대상으로 3차에 걸친 21일 수련회를 끝내고, 6 21 UTS를 졸업하자, 참아버님은 문회장이 워싱턴 타임즈를 비롯한 방대한 통일운동 기반을 실질적으로 상속받고 참아버님이 없어도 잘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매우 구체적으로 문회장과 간부들에게 지시하셨다.[1]
 
이후 참아버님은 문회장에게 수차례 워싱턴 타임즈 책임을 맡을 것을 말씀하셨지만, 문회장은 참아버님의 양해를 구하고 약 5년간에 걸쳐 통일가 2세권을 살리기 위한 공적 활동에 주력하였다. 2006 4월에 참아버님은 문회장에게 UCI 이사장 책임을 맡기셨고, 그때부터 문회장은 워싱턴 타임즈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지게 되었다.
2006 12 31일 문회장은 참아버님께 올린 보고서에서 워싱턴 타임즈의 비전과 발전계획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였다. 핵심적인 내용을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워싱턴 타임즈에 대한 비전은 크게 2가지입니다. 품질을 향상하여 지역 발행 부수를 증가시키는 것과 인터넷을 통해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신문의 편집방향을 극우에서 중도우파로 선회함으로써 잠재적 구독층을 증가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론이 설립자의 관점과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인 가정, 신앙, 자유와도 더욱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가치들은 정치적인 성향을 달리하는 대다수의 미국인에 의해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기업가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것입니다.
한편 타임즈의 웹사이트는 전통적인 가치들을 지지하는 모든 언론의 선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신문들과는 달리 워싱턴 타임즈는 미국 전역과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가능합니다... 인터넷 시대에는 워싱턴 타임즈와 같이 전국적인 브랜드 인지도를 지닌 신문이 규모가 큰 지역신문들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타임즈는 전국적인 입지를 확고히 굳히고 인식기반을 확대하여 국내외에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사업으로서도 자리매김할 것입니다...워싱턴 타임즈는 인터넷에 미비한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브랜드를 갖고 있으며...벌써 인터넷상의 워싱턴 타임즈는 3천만 히트를 기록하고 있어 인터넷 트랜드를 모니터하는 NAA로부터 가장 빠른 성장도를 보이고 있는 매체로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워싱턴 타임즈가 전국적으로 많이 인용되는 신문이기 때문에, 특히 막강한 보수진영 라디오 방송 등과 연대하여 인터넷 전략을 펼친다면 높은 성공확률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현재 워싱턴 타임즈는 구조개혁과 브랜드를 활용한 인터넷 전략을 통해 미국의 보수주의를 두익사상을 토대로 새로이 정립하는 계기를 만들어 가려 합니다."
 
이 보고서에서 문회장은 참아버님께서 당시 사장이었던 주동문 씨를 해임하고 문회장이 워싱턴 타임즈의 사장이 되어 직접 경영하기를 원하셨지만, 창시자의 아들이 경영자로 나서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의견을 내고 미국 식구를 사장으로 추천하였다.
 
문회장은 2007 5월 참부모님을 모시고 워싱턴 타임즈 25주년 행사를 성황리에 개최하였으며, 참부모님께 올린 2007 6 8일 보고문을 통해 "이번 행사를 계기로 Brighter Bolder에 걸맞은 정론.직필의 타임즈 전통은 반드시 세계 독자층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고, 경영상의 수지도 머지않아 크게 개선되어 나갈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9 28일 올린 보고문에서는 워싱턴 타임즈 내에 13개 부서를 통괄하는 자체적인 태스크포스팀을 결성하여 창사 이래 처음으로 대단위 기업 구조조정을 실시해 왔다고 밝혔다. 워싱턴 타임즈는 20년 넘게 매년 동일한 규모의 손실을 감수하며 운영해 왔으나 2007년도부터 시작된 획기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2008년도에는 그 적자폭을 전년에 비해 7백만 불이나 줄이게 되었다. 특히 이 기간에 수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직원 수를 635명에서 398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
 
문회장은 2007년부터 UPF 공동의장으로 활동하였고, 2008년부터는 남미 섭리까지 책임 맡게 됨에 따라 남북미 섭리는 물론 세계적인 섭리 운동과 연계하여 워싱턴 타임즈 경영전략을 짜고 이를 실행해 왔다. 2008 3 23일 참부모님께 올린 문회장의 보고문에서는 워싱턴 타임즈를 "가장 소중한 미디어 자산임과 동시에 세계 섭리를 지원하는 중요한 전략사업"으로 설명하고 있고, 2008년 활동계획을 설명할 때는 "저는 미국에 있어서 작년과 마찬가지로 미디어, ACLC, AFC 3대 분야를 중심하고 거대한 미국을 움직이고 유엔과 중동, 그리고 세계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반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특별히 작년에 새롭게 개편한 ACLC AFC의 전국적 기반을 신속히 활성화시켜 나가는데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배려하겠습니다. 이 기반을 토대로 우리의 훈독가정교회 활동, 미디어 기반, 비즈니스 산업, 그리고 남북미연합 활동 등 모든 섭리 사업들이 뻗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무렵 워싱턴에서 또 다른 보수 신문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 최고의 갑부가 세 차례나 문회장을 만나 워싱턴 타임즈 매입을 타진했지만, 문회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돌려보냈다. 워싱턴 타임즈는 비록 수십 년간 10억 불 이상 적자가 누적된 회사였지만 절대 문을 닫을 수 없고, 아무리 돈을 많이 주어도 팔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섭리적인 기반이었기 때문이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문회장을 중심으로 일궈낸 워싱턴 타임즈의 변화와 성과는 괄목할만한 것이다. 당시 워싱턴 타임즈 사장이었던 톰 멕데빗은 2008 11 21일 자로 이것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특별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워싱턴 타임즈의 혁신과 변화"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그는 문회장과 함께 이룩한 18개월에 걸친 워싱턴 타임즈의 도전과 혁신, 그에 따른 성과와 미래전망 등을 정리하였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문회장을 "검증된 경험과 지칠 줄 모르는 헌신이 바탕이 되어 뛰어난 영감과 전략적인 사고를 발휘하는 지도자"로 평가했다. 그는 문회장과 함께 어떻게 워싱턴 타임즈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주요 내용만 요약함).
 
2007 1월에 문회장의 과감한 리더십에 힘입어 새로운 경영진이 구축되었다. 그들은 워싱턴 타임즈의 창간 25주년 기념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리고 LEK(미국의 유명 컨설팅사) 등과 함께 본격적인 혁신에 착수했다. 2007 6월에 기본 계획이 마무리되면서 편집실, 판매 마케팅부 등 각 부서별로 전략적 실행을 주도하기 위한 인력들이 보강되었다. 특히 존 솔로몬 같은 능력있는 인재를 편집장으로 영입하였다. 6 2일부터 인쇄지와 인터넷판 신문의 디자인이 확 달라졌고, 7 14일에는 위클리지(주말판)도 참신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5 27일 새롭게 오픈한 웹사이트는 획기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인터렉티브한(양방향 소통) 기능이 강화되어 독자들의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넷을 통해 독자들은 워싱턴 타임즈가 선보인 라디오 프로그램과 비디오 방송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뉴 웹사이트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2008 1월 방문자수는 150만 명에 그쳤고, 페이지뷰는 610만이었으나, 새로운 웹사이트를 선보이자 방문자수는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10월에는 477만 명의 방문자수와 1450만 페이지뷰를 기록했다. 신문 구독자도 증가하여 지역판의 경우 2008년 목표인 9만부 달성에 근접했다. 무인 신문가판대도 새롭게 디자인되어 워싱턴 DC 전역에 2400개가 설치 되었다. 경비절감을 위한 인력구조조정도 잡음 없이 이루어져 2007년에 620명이었던 직원 수는 2008 11월에 420명으로 줄었다. 이와 같은 혁신으로 워싱턴 타임즈의 수익성은 높아졌고, 지속적인 성장과 더불어 미국의 메인스트림(주류사회)과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미디어 허브로서의 기능 수행이 가능해졌다...
 
워싱턴 타임즈는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였으나, 불행하게도 2009년에 내부갈등이 표면화되고 일본교회의 재정위기 사태까지 겹쳐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2009 2월경 일본교회에서 심각한 재정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문회장은 세계순회를[2] 떠나기에 앞서 2 23일 소집한 북미 지도자 비상대책회의에서 서두에 워싱턴 타임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지도자들의 각오와 협조를 구했다.
 
"2009년 올해 더 이상 나빠질 수도 없는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워싱턴 타임스와 언론 재단을 잃으면 그야말로 게임 끝입니다. 아버님께서는 미디어 기반을 최우선으로 지원하도록 하셨지만,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 그것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는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부족분이 얼마나 생기든지 간에 우리는 어떻게든 미국 내에서 미디어 기반을 지원할 방법이 없는지 생각해 내야 합니다... 어찌 해야 워싱턴 타임스라는 항공모함이 가라앉는 걸 막을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게 저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문회장은 미국 지도자들에게 이와 같이 당부하는 한편, 3월경에 참부모님께도 워싱턴 타임즈에 관한 보고서를 준비했었다. 이 서한에서 문회장은 UCI로 오는 지원금을 2009년부터 2400만 불 줄이겠다는 참아버님의 방침( 30% 삭감)에 대해 "워싱턴 타임즈 같이 세계적인 지명도가 있는 언론사가 이렇게 큰 폭의 재정지원 감축을 단행하면서도 회사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브랜드 가치를 계속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해서 회사들의 재정상황을 개선하고 이 어려운 시기를 넘어갈 것을 결심하고 있습니다."라고 적고 있고, 지원금이 대폭 줄어든 만큼 미디어 관련 회사들이 도산하지 않도록 반드시 약속된 지원금을 제때에 보내줄 것을 부탁드리고자 했다. 그는 이 서신에서 "제가 이러한 내용까지 직접 말씀 드려야 하는 이유는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국진과 피터 킴은 항상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적어 당시 두 지도자에 대한 심각한 우려감을 드러냈다.
 
이 서한은 2 26일 미국 이사회 파동과 3 8일 발생한 속초사건의 후유증으로 실제 전달되지 못했다.
 
4. 지원금 중단과 UCI 이사 해임
 
3 8일 속초에서 문회장은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몰려 모든 직위를 박탈당했고, UCI 이사장 자리에서도 물러나라는 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문회장은 그 자리에서 물러날 뜻이 없어 보였다. 그러자 참아버님을 둘러싼 지도자들은 문선진 씨와 김기훈 씨를 UCI 이사로 추가 선임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참아버님의 허락을 얻어냈다. 그들은 이 내용을 참아버님의 지시사항이라며 문회장에게 전달하였지만, 문회장은 그들의 계획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계획이란 이사회의 과반수를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UCI 이사는 문회장과 두 명의 미국인 이사인 마이크 소머, 존 모리스 그리고 김효율과 주동문 등 총 5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사 추가선임 건이 무산되자, 주동문 씨는 과거 인연이 있던 존 모리스를 회유하여 한국으로 부르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김효율과 주동문 두 사람만의 발의로 UCI 이사회 소집이 요구되었으나, 나머지 3명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이처럼 문회장을 UCI 이사장에서 끌어내리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되는2009 4월부터 약속된 지원금이 제대로 송금되지 않았다. 4월에는 약속한 금액의 절반인 25십만 불이 송금되었을 뿐이고 5월에는 내내 지원금이 보내지지 않았다. 결국 5 28일에 뉴스월드(UCI 산하에 있으며 워싱턴타임즈의 모회사)의 재무담당인 키스 쿠퍼라이더가 김효율 씨(이하 호칭 생략)에게 긴급한 이메일을 보냈고, 이후 일시적으로나마 자금문제에 조금 숨통이 트인 것 같았다. 그러나 키스 쿠퍼라이더가 7 14일 김효율에게 보낸 이메일을 보면 2009년 상반기 내내 UCI는 일본으로부터의 송금문제로 상당한 고통을 받으며 매달 간신히 위기를 넘기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키스 쿠퍼라이더가 다급한 이메일을 김효율에게 직접 보낸 것은 그가 참부모님의 보좌관임과 동시에 워싱턴 타임즈 운영에 책임을 져야 할 UCI 이사였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키스 쿠퍼라이더의 이메일에 대해 김효율은 UCI에 보관하고 있던 별도의 자금 일부를 빼서 사용할 것을 지시하면서도 "앞으로는 그쪽에서 자금이 필요할 때는 일본으로 직접 연락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일본은 KJ님이 책임지고 계십니다"라고 하여, 워싱턴 타임즈의 재정위기에 대해 직접 책임지려 하기보다는 일본 책임자로 있는 문이사장에게 공을 떠넘기려는 의도가 역력해 보였다. 키스 쿠퍼라이더는 김효율의 말에 따라 일본 쪽으로도 연락을 취해 보았지만, 전혀 응답이 없다고 했다. 그는 7 22일 자로 김효율에게 보낸 "Please help"라는 이메일에서 "말씀해주신 대로, 준호씨와 이메일, 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연락해 봤지만, 전혀 응답이 없었습니다. 저희는 이미 벼랑 끝에 몰려 있습니다. 이번 주는 월급이 나가는 주입니다만 우리는 지난주에 필요한 금액을 다 받지 못했으며 이번 주 입금도 불명확합니다. 그럼 이제 문닫을 준비를 해야 하는지요...제발 도와주십시오." 라고 절박한 상황을 알렸다.
 
문회장은 워싱턴 타임즈가 UCI까지 장악하려는 그들의 계략의 희생양이 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30%나 삭감된 지원금마저 지연시켜 워싱턴 타임즈를 부도위기로 내몬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게다가 기존의 송금방식을 바꾸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그는 얼마 뒤인 8 16일 참아버님께 보낸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과 같은 위기의 순간에 더 큰 혼돈과 오해를 만들어내고 있고 아버님의 기반을 갖고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버님, 일본으로부터의 지원금은 이미 금년 초에 30% 이상 삭감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UCI 역사에 유례가 없는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1년 만에 급격한 삭감이 단행되었어도 UCI는 모든 관할 조직과 활동들, 특히 미디어 기반들을 발전시키고 성장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UCI로 지원되는 자금의 성격을 투자에서 융자로 바꾸려 하거나, UCI가 설립된 이래 줄곧 활용됐던 기존의 채널을 무시하고 다른 수단을 통해 자금을 보내려고 하는 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국, 2009 7 13 50만 불 송금을 끝으로 일본으로부터 더 이상의 송금이 없고, 김효율 등을 통한 송금재개 노력도 무위로 돌아가자 문회장은 8 2일 파라과이 방문 중에 UCI 이사회를 소집하였고, 김효율과 주동문을 이사직분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해임하였다.
5. 송금중단의 원인과 문회장의 송금 재개 노력
 
2009 7월 이후 UCI는 내부 자회사로부터 자금을 차입하고, 미국 협회로부터도 빌려준 돈 일부를 돌려받아 워싱턴 타임즈를 가까스로 유지해나갔다. 김효율은 문회장에게 8 14일 발송한 서신에서 UCI에 맡겨져 있는 별도의 자금에서 워싱턴 타임즈 운영자금을 빌리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일본으로부터의 송금이 삭감 또는 중단된 원인이 UCI 설립자인 참아버님의 지시와는 반대로 UCI 이사들을 정리한 것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일본교회가 비축자금을 통해 UCI 지원을 계속할 수 있다고 했다.
 
김효율은 8 14일 서신에서 일본교회에 비축자금이 있음을 시사했다. 일본교회가 재정위기를 겪고 있었지만, 워싱턴 타임즈를 지원할 수 없을 정도의 최악은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한편, 일본에 돈이 한 푼도 없다 하더라도 워싱턴 타임즈를 즉각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예를 들어 김효율이 사무총장으로 있던 선교회 재단을 통해서도 지원이 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선교회 재단이 확보하고 있던 현금은 2008 12월말 기준으로 1660억 원이었고, 2009 12월 말 기준으로 2332억 원이었다(한국신용평가정보원이 분석한 공식 신용분석보고서). 2009년에 워싱턴 타임즈는 자금지원이 안 되어 생사의 기로를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때 선교회 재단에는 막대한 현금이 쌓여 있었고, 심지어 그 해에 672억 원의 현금이 증가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돈이 있었음에도 UCI와의 갈등 때문에 워싱턴 타임즈 지원을 중단한 것이 사실이라면, 문회장의 말대로 그들은 섭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반을 갖고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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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김효율이 UCI로 발송한 서신에는 UCI가 다른 목적으로 비축하고 있던 남은 자금 550만 불을 워싱턴 타임즈와 UPI의 운영을 위해 빌려서 사용하라는 내용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UCI 8 17일 답신을 통해 위 자금을 미디어 운영자금으로 투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금지원 재개에 대한 약속이 필요하다고 했다. UCI는 그 이유로서 자금지원 중단으로 워싱턴 타임즈의 운영이 멈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는 직원, 채권자, 판매자 등에게 진 의무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정한 자금을 비축해야 하는 법적인 의무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이러한 의무를 굳이 수행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은 27년간 재정지원이 끊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효율은 8 19일 자 답신을 통해 일본 통일교회가 UCI를 지원한 것은 언제나 자발적이었음을 밝히며, 이사회 문제가 창시자(참아버님)와 후원자에게 염려를 끼쳐 UCI 지원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는 UCI 이사회 상황을 해결하면 UCI가 필요로 하는 자금이 다시 제공될 것이라고 했고, 구체적으로 이사회를 본래대로 복귀시키고 새로운 회원 두 명을 이사회에 추가해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는 문회장이 직접 참아버님과의 대화를 재개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회장은 김효율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워싱턴 타임즈를 둘러싼 사건을 놓고 참아버님께 직접 상의드리고자 했다. 그는 이미 8 12일에 워싱턴 타임즈에 발생한 위기를 놓고 참아버님께 첫 보고서를 올렸고, 8 15일과 8 16, 8 19, 10 14일에도 워싱턴 타임즈의 다급한 사정을 알리는 특별 보고서를 올렸다. 당시 김기훈 씨가 참아버님께 서신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언젠가 이 편지들이 모두 공개되면 당시의 상황들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보지만, 여기서는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만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문회장은 참부모님께 올리는 보고서에서 자금지원이 재개되지 않으면 언론사 문을 닫으라는 결정이나 다름없다고 하며, 한국에서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무책임한 행동들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했. 그는 일본에 자금이 있어도 국내사정으로 송금을 위한 새로운 구조를 모색해야 한다는 문이사장의 또 다른 송금중단 구실에 대해, 문이사장이 새로운 방안을 찾을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때까지 CC나 일성에서 돈이 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CC2009년 말까지 자금 분산에 대해서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일성건설은 상장회사이기 때문에 정당한 이유 없이 자금을 이동시킬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회장은 워싱턴 타임즈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UCI가 계속 일본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거나, 문이사장이나 주동문 회장이 워싱턴 타임스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했고,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쪽이라도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문회장은 수차례 참아버님께 편지를 올리고, 9 10일에는 참아버님을 직접 찾아뵙기도 했지만 워싱턴 타임즈 재정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뚜렷한 해결책은 찾아지지 못했다. 참아버님께서 사태의 심각성을 아시고 일본에 돈이 없으면 한국에서라도 지원해주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보고가 문회장 측에 전해졌지만, 재정지원이 정상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 대신 일본협회는 미국협회로 8월부터 10월까지 매달 3백만 불씩 송금을 하였고, 미국협회는 이 자금에서 860만 불을 부채상환 목적으로 UCI 쪽에 갚아주었다. 이 무렵 일본에서는 워싱턴 타임즈를 위해 헌금을 걷어 미국으로 보내고 있는데도 그 돈을 UCI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고 워싱턴 타임즈로 실제 보내지 않고 있다는 부정적인 소문들이 돌았다. 일본의 모 간부가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일본협회의 송금담당자에게 문의하였는데, 담당자의 말로는 7월부터 10월까지 매달 3백만 불이 UCI를 위해 지원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UCI 자금담당자는 UCI가 실제 받은 자금은 7월에 일본협회로부터 150만 불, 8월과 11월 사이에 미국협회로부터 380만 불과 300만 불, 180만 불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협회로부터 직접 들어온 자금은 7 13 50만 불이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문이사장, 김효율, 주동문 등은 후일 송금중단 이유로 UCI 이사회 변경, 일본교회 재정위기, 송금채널의 변경 등에 이어 일본에서 보낸 지원금이 워싱턴 타임즈를 위해 사용되지 않았다는 이유까지 덧붙였다. 문이사장 등이 발표한 2010 7 22일 성명서에는 "2009 8월부터 수개월 동안 워싱턴 타임즈를 위해 UCI에 충분한 양의 자금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 자금의 대부분은 워싱턴 타임즈를 위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추궁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UCI는 워싱턴 타임즈를 닫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런 행동들로 인해 UCI는 투자자들과 지지자들의 믿음을 잃었고 그들은 더 이상 자금을 보내지 않았습니다..."라고 되어있다. 8월부터 11월까지 미국협회로부터 채무상환 형식으로 받은 860만 불이 충분한 양의 자금인지 생각해볼 문제이다[3]. 그리고 '워싱턴 타임즈를 닫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는 표현과 '부도 또는 파산위기에 직면하여 법적인 충당금을 비축해 놓아야 한다'는 표현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이와 같은 성명서가 나간 이후 교회 지도자들은 앵무새처럼 그들의 주장을 되풀이 했다. 대표적으로 2009 2월부터 일본 통일교회 총회장을 맡은 송영석 씨는 2011 10 20일에 한국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4] 송금중단의 이유가 "UCI에 지원한 돈이 워싱턴 타임즈에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과 당시 일본 내 사정이 어려웠던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UCI로의 송금이 중단된 것인가"라는 판사의 질문에 ""라고 답변했다.
 
6. 워싱턴 타임즈 자체 생존을 위한 UCI의 노력
 
문국진 이사장과 김효율, 주동문 등은 2009 10월부터 참아버님께서 지시하셨다는 구실과 더불어 공개적으로 법적 소송을 준비하기 시작했다.[5] 이에 대하여 UCI도 주동문을 워싱턴 타임즈 관련 직책에서 해임하는 등 대응준비에 나섰다. 이후 11 4일경 문회장은 공개적인 성명서를 통해 GPF 재단을 창설하여 독자적인 섭리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인 11 9, UCI 계열인 워싱턴 타임즈 항공사의 자금 2100만 불이 선교회 재단으로 무단 송금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6], 이것은 UCI의 자금줄을 모두 차단하고 고갈시키려는 분명한 의도로 보였다.
 
문회장은 2009 11월 이후 문이사장을 중심한 교회 측 지도자들이 워싱턴 타임즈를 위해 더 이상 자금을 지원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UCI 11 19일경 워싱턴 타임즈를 부도와 파산 위기로부터 구해내어 독자적인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수립하였다. 참아버님께서 언론사 문을 닫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남은 방법은 신속한 구조조정밖에 없었다. UCI로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고, 이를 참아버님께 보고 드리자마자 즉각 시행하였다.
 
UCI는 참아버님께 전달한 보고서를 통해 구조조정의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 전통적인 신문 인쇄 모델로부터 디지털 인터넷, TV, 라디오 등의 제품과 매출에 보다 집중하는 멀티미디어 접근법으로의 전환.
둘째, 신문 발행 부수를 현재의 65,000부에서 25,000부로 줄임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주요 고객과 시장(정부, 주요 기관, 대사관, 고소득층 시장 등)에 집중함
셋째, 직원 수를 380명에서 110명으로 감축
넷째, 이와 같은 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순손실 규모를 3600만 불에서 800만 불로 줄임"
 
UCI는 인원 및 조직감축 비용으로 약 15~2천만 불이 필요한데, 만일 이에 대한 지원이 허락되지 않으면 UCI 내 자산을 매각해서라도 그 비용을 만들어야 함을 알렸다.
 
워싱턴 타임즈의 경영위기와 강도 높은 구조조정 소식은 주위 언론에도 알려졌고, 2010 5 1일 경쟁지인 워싱턴 포스트는 교회 측의 재정지원 중단으로 워싱턴 타임즈가 매각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도했다. 2010 6 17일에 UCI가 참부모님께 올린 보고서에 의하면,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가장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서에는 "저희들은 현진님의 지도 아래 3년 만에 구조조정을 일단락 지었으며, 2009 4월부터 UCI 에 대한 교회의 지원금을 30% 가까이 절감해야겠다는 아버님의 요청에도 기꺼이 준비하였습니다. 만일 지금까지 아버님의 기대에 부응하여 UCI 에 대한 약속된 지원금이 계속 왔더라면, W. 타임즈는 지금쯤 하늘을 날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버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습니다."라고 적고 있어 하늘의 소중한 섭리 기반이 1년 만에 무너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었다.
 
7. 워싱턴 타임즈 인계를 둘러싼 교섭과 극적인 타결
 
UCI 2010 6 17일 참아버님께 올린 보고서를 통해 워싱턴 타임즈를 지원하기 위한 자체적인 자금 여력이 없음을 밝혔고, 더 이상의 자금지원이 없을 경우 신문사를 폐간하던가 매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보고드렸다. 만일 문이사장이 UCI를 신뢰하지 못해 지원을 거부한다면, 신문사를 살리기 위해 그가 원하는 다른 조직 산하로 신문사를 옮길 수도 있다는 건의를 드렸고, 이에 대한 신속한 조치를 참아버님께 부탁드렸다.
 
UCI 2010 8 12일 참부모님께 올린 보고문에 의하면, 6 17일 자 보고서가 발송된 이후 두 조직이 아버님의 지시라 하며 신문사를 인수하고 싶다는 의향을 보내왔다고 했다. 하나는 주동문이 세운 뉴스 월드 미디어 디벨롭먼트(NWMD)라는 회사였고, 다른 하나는 미국 통일교회로서 7 15일자로 워싱턴 타임즈를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고 했다.
 
이후 2010 10월 말까지 약 3개월에 걸쳐 인수인계를 위한 협상이 이어졌고, 그 사이에 고의적인 지연으로 워싱턴 타임즈가 폐간 직전까지 내몰리고, 리차드 스타인브런이라는 자로부터 워싱턴 타임즈를 강제부도 내기 위한 소송을 당하는 위기도 있었다. UCI 7 16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문이사장이 워싱턴 타임즈를 새로운 기관으로 이전시키는 일을 가로막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UCI는 이 성명서에서 "일본 교회식구를 몰아세워 워싱턴 타임즈를 지원하자는 위장된 명목으로 헌금을 계속 거둬 놓고는, 정작 이 기부금을 자신이 정한 임의적인 목적에 전용했다"며 문이사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였다. 이 성명서를 교회 식구들의 온라인 블로그에 올린 김경효는 문이사장과 통일교 유지재단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으나, 이 사건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로 판결이 났다. 더구나 1심 재판의 판결요지에 따르면, 담당 판사는 워싱턴 타임즈 이름으로 일본교회가 헌금을 걷었는가에 대해 이를 부인한 원고 측 증인에 비해 이를 시인한 피고 측 증인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보인다는 판결을 내렸다. 또한 워싱턴 타임즈와 관련된 헌금에 문국진이 관련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문국진이 일본 통일교 내에서 조직과 자금을 총괄하는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인다."고 판결했다. UCI가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 내용을 놓고 문이사장이 식구를 법정에 고소함으로써 오히려 그 진실이 제대로 밝혀진 결과가 되어 버렸다.
성명서 공방과 식구고소, 강제부도를 도모한 소송 등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다행히 워싱턴 타임즈 폐간이라는 파국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미디어 기반을 지켜야 한다는 식구들의 의지가 합쳐져서 신문사 인계를 위한 극적인 타결이 이루어졌고, 2010 11 1, 1달러에 워싱턴 타임즈를 새로운 기관인 NWMD로 인계하는 최종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8. 워싱턴 타임즈는 공산당으로부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께 돌려드린 것
 
참아버님께서 문회장에게 2000년 초부터 워싱턴 타임즈를 맡으라고 했을 때, 그는 쉽게 그 자리를 넘겨받지 않았다. 워싱턴 타임즈가 단순한 하나의 언론사가 아니라 섭리의 중심 기관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자리를 맡을 때 섭리적인 책임을 능히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그는 수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06년도에 워싱턴 타임즈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약 3년간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이뤄내고, 새로운 발전과 성장을 위한 준비를 갖췄다. 그러나 본격적인 도약을 시도하기도 전에, 그는 이후 약 1년 반 동안 워싱턴 타임즈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고, 신문사를 목숨만 부지한 상태에서 다시 아버지께 돌려드려야 했다.
 
수십 년간 1조 원 이상의 섭리 자금이 투입되어 세계적인 언론사로 자리잡은 워싱턴 타임즈를 이렇게 만들어 참아버님께 돌려드리는 자식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통일가 내의 갈등과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만신창이가 된 신문사를 다시 돌려드리는 마당에 이를 두고 공산당으로부터 되찾아 왔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해오셨다면, 부끄럽고 창피한 역사의 단면을 하나님께서 어찌 바라보실 것인가? 어느덧 영계로 가신 참아버님께서 모든 진실을 아신다면 이 되돌릴 수 없는 지상의 흔적을 어찌 바라보시겠는가?
 
9. 결론
 
2009년부터 2010년 사이에 워싱턴 타임즈를 둘러싸고 발생한 사건들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백서가 나와야 할 정도로 섭리사에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이 사건에 대하여 앞으로 보다 폭넓은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더욱 세밀한 조사와 역사적 평가가 내려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워싱턴 타임즈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언젠가 섭리적인 의식과 역량을 갖춘 현명한 지도자가 워싱턴 타임즈의 영광을 다시금 되살릴 날이 오리라 믿으며 본 글을 마친다.
 


[1] 앉으라구. 현진이도 앉으라구. 곽정환이는 말이야, 현진이랑 데리고 가서 양창식, 주동문을 중심삼고 관계돼 있는 워싱턴과 뉴욕에 있는 사람을 중심삼고 미국에 대한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시켜야 되겠다구. 알겠나? 「예.」 너(문현진)는 곽정환이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될 수 있게끔 워싱턴에 가 가지고 계획하는데 빠지지 말고 모든 것을 네가 알아야 되겠다구. 아버님 대신이야. 알겠나? 실천할 수 있는 책임자로서 간다고 생각해. 곽정환이는 그런 면에서 길러 줘야 돼. 셋이 합해 가지고 미국이라든가 한국이라든가 어디 가더라도 지장이 없게끔 해야 돼. 한국에 가도 한국 황선조와 연결시켜 곽정환이와 합해 가지고 어디든지 거쳐가는 데 지장이 없게끔 앞으로 편성을 해 가지고 자유스런 환경을 만들어 줘야 된다구...(문현진)는 곽정환이하고 이 세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돼 가지고 의논하고, 거기에 정비할 모든 것, 느끼는 모든 것이 있으면 회의에 제시해 가지고, 어떻고 어떻게 느낀다는 것을 제안해 가지고 균형을 취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세워 놓아야 돼. 그래야 앞으로 아버님이 없더라도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어. 지금 중심이 없어. 알겠어? 알겠나?「예. (말씀선집 350, 212~213, 2001.08.06, 이스트가든)
「저는 오늘 워싱턴에 가서 곽 회장하고 주 사장하고 현진 형님하고 같이 회의를 하겠습니다.무슨 회의든지 현진이를 가담시키는 것이 좋아요. <워싱턴 타임스>라든가 유 피 아이(UPI) 통신사라든가 어디나 말이에요. 그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이제 뭐니뭐니해도 현진이를 무시 못 해요. 지금까지 청년들 교육도 했고 말씀도 하고 영향도 주고 그랬기 때문에 누가 무시를 못 해요. 참석하는 사람들도 선생님 아들보다도 선생님 대신으로 알고 앞으로 울타리가 되어서 전통을 세워야 되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구요. (말씀선집 350, 245~246, 2001.08.07, 이스트가든)
 
[2] 문회장은 참아버님으로부터 전 세계 약 50개국 이상을 순회하며 글로벌 피스 투어를 실시하라는 지시를 1월에 받았고, 2 27일 일본에서 첫번째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3] 2009 4월부터 매달 UCI로 송금하기로 된 금액은 5백만 불이었다. 일본 재정위기가 발생한 뒤 UCI8월경 월 4백만 불까지 감수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문회장의 직접 보고를 받은 참아버님께서는 이사회 구실 달지 말고 워싱턴 타임즈를 무조건 지원하라는 말씀이 있었다. 이때 김효율은 월 3백만 불밖에 지원할 수 없다는 연락을 UCI 측에 보내온 것으로 안다. UCI 8월부터 11월까지 받은 860만 불은 월 3백만 불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4] 사건번호 2011고정749 (통일교 유지재단과 문국진 이사장이 김경효 씨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
 
[5] 비공식적으로 확인된 바에 따르면 그들의 법적 소송준비는 2009 3월 속초사건 당시부터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은밀히 타진해 오다가 2009 10 8일 미국 교회 이사회에서 김효율이 법적 수단에 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였고, 문국진 이사장과 일본협회의 지원을 부탁하였다.
 
[6] 이 사건으로 현재 김효율과 주동문은 배임횡령 혐의로 형사재판 중에 있다.

 

12.11.08. 03:10 new
억울하고 원통한 누명으로 곡절의 사연과 한....천지가 분노할 것이다. 천상의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아시고 통곡하리요
12.11.08. 03:39 new
가슴 아프고 통일가의 식구들 모두가 통곡할 일 입니다. 진정으로 참아버님께서 뜻하신대로 워싱턴 타임즈의 사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올 수 있도록 우리 통일가의 식구들이 진실을 알고 책임을 다해야겠습니다.
12.11.08. 08:58 new
곽그룹은 사실과 거짓을 섞어서 이야기한다. 참아버님은 공산주의자의 농간으로부터 희생된 WT를 상징적인1달러로 찾아오시면서 상상할수 없을 정도의 거액의 채무도 갚아주셨다 이후 하나님 섭리를 방해한 공산주의자들은 WT권리는 팔았으니 이번에는 건물을 추가로 구입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하였고 뼈를 깎는 분노를 머금고 추가 비용을 지급하였다. 이런 내용도 포함해야 하지 않겠는가
12.11.08. 09:23 new
그 공산주의자가 도대체 누구인데?
12.11.08. 10:20 new
현진님하고 그 주변인물들...몰라서 묻나...참내...
12.11.08. 10:30 new
억울하고 분통하고비절참절하도다. 하늘향한 뜻섭리에 미치신분을 어찌 공산주의자라 막말을 내밷을 수가... 하늘이 분노하고 땅이 치솟아 참과 거짓이 판가름 될때 통곡의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찌니.....
12.11.08. 11:13 new
뭐가 억울해...참아버님이 공개석상에 서실때마다 영원히 남기시는 기록물에 언제나 힘줘서 읽으신 내용인데 무슨...무슨 하늘이 분노하고 땅이 치솟냐...하늘하고 땅이 참 할일도 없다....
12.11.08. 11:14 new
결국 아버님께 저런 평가를 받는게 그렇게 억울한건...아버님보다 현진님이 중요한 섭리적 인물이라는 전제가 없고는 불가능....
12.11.08. 11:30 new
뭔눈에는 뭐만보인다고 그것도 생각이라고 하고있소.. ㅉㅉ
12.11.08. 11:14 new
워싱턴 타임즈를 참아버님께 돌려드렸다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했다. 왜 이게 안타까운 일인지? 가져가놓고 운영이 안되니 다 죽어가는 회사 떠넘긴거 아닌가? 안타깝다는건 어쩔수없이 줬다는 말이지. 자진반납 한건가?
12.11.08. 11:33 new
운영안되게 만든사람이 누군데 헛소리야!
12.11.08. 19:20 new
누군데? 그니까 결국은 운영을 못해놓고 버린거잖아. 돌려드린거냐?
12.11.08. 23:18 new
삽질그만하고 잠이나 자라. 뭔 말이 통해야지 자판 두드릴 힘이나 나지. 헐....
12.11.08. 23:52 new
나야말로 하고싶은 말이다. 눈을 가린거냐 생각이 없는거냐. 처자라
12.11.08. 11:14 new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거액의 채무라...이 보고서에서 WT 인계를 위한 자세한 과정과 최종 합의사항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사실을 감추려 한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신뢰를 위해 아직 공개할 때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더 구체적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글 쓰지 말기 바란다. 건물에 대한 부분도 합의사상에 다 포함되어 있었다.
12.11.08. 12:31 new
빼먹을 것이 없으니 돌려준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CC나 돈될만한 워싱턴메리아트 아틀란틱비데오 등등등은 왜 안돌려주고 팔아먹었을까요?
12.11.08. 12:32 new
아닙니다. 그것도 그냥돌려준것이 아니라 빗덤이와 $1받고 넘긴거지요
12.11.08. 21:27 new
속초건은 그 당시 대륙회장으로 있던 김병화회장이 현진씨의 사주를 받아서 각본을 짜놓고 뉴욕커와 맨하턴센터를 먹으려고 이사회를 진행하려고 시작하기 전에 엘리베이터에 당시 협회장이였던 젠킨스씨에게 이번 사항은 쿠데타와 같은것이다. 신속하게 처리하고 아버님께 보고드리면 허락하지 않을 수없다라고 했다라고 미국에 사는 2세 간부가 그러던데요.
그래서 젠킨스협회장이 놀라서 한국에 아버님께 보고를 해서 그것이 속초사건이라고 하더라구요. 사실 그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랬습니다
12.11.08. 23:41 new
인진이가 마음대로 바꿔놓은것을 아버님의 명대로 다시 제자리로 되돌리려고 이사회를 열려고 했다쟎소! 좀 앞뒤 사정을 알아보고 떠들어라. 구테타는 누가 했는데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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