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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문국진 퇴진 희망, 무엇을 위한 소동인가?

문국진 퇴진 희망, 무엇을 위한 소동인가?
 


종교가 부패하면 어떻게 될까?

예수는 그것을 무덤이라고 했다. 율법주의에 물들고, 형식화된 신앙집단이 되어버린 유대교회를 향하여 일갈했던 말은 "회칠한 무덤"이었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멀어진 교회는 생명력을 잃어버린 죽은자들의 모임이다. 죽은자가 있는 곳은 무덤이다. 아무리 화려한 꽃단장을 해도 그것은 무덤에 불과하다.

참아버님이 성화한 지금 통일가는 기로에 놓여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어 나갈 것인가? 아니면 섭리와 상관 없는 일개 종교교파로 1세기도 지나지 않아 명멸할 것인가? 과연 지금 우리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통일가는 지금 죽은자들의 공동체, 회칠한 무덤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살아있는 자들은 보이지 않고, 좀비들만 우글거리는 집단이 되어가고 있다.
재단이사장 자리를 놓고 쫓아내려는 어머님과 살아 남으려고 하는 재단이사장과 그를 동조하는 주변세력 간의 싸움이 볼쌍스럽다. '범법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해임안이 가결 되더라도 무효'라고 하는 법적근거에 의해 오늘 재단 이사회의 해임안 의결은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금방 읽었다.

나는 여기에서 재단이사장이라는 개인의 인사 문제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에게 원한이나 서운한 감정이 없는 사람이다.

그의 진퇴 문제는 이제 섭리사의 향방을 가로지을 중요한 문제기 때문에 관심을 두고 있다. 알다시피 지난 4년간 문형진 세계회장은 참아버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리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간판을 떼고 "통일교"라는 종교의 간판 아래, 성령치유 진동술을 설파하고, 참부모님을 신격화 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왔다. 수십년간 참아버님이 애지중지 하며 키워낳온 섭리기관들과 섭리운동을 하나 하나 폐지해 버렸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섭리와는 전혀 관계 없는 방향으로 통일가를 이끌어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식구들은 아우성을 쳤다. 파이오니어 카페는 이러한 반섭리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양심있는 식구들의 아고라 광장이 되었다.

문국진 이사장은 바로 이러한 반섭리의 우두머리 역할을 해온 문형진 회장을 지지하고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이다. 그는 회계사들을 앞세워 기관과 지도자들을 감사해서 약점을 찾아냈다. 그의 공포정치는 그에 반하는 어떤 반대의견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강한대한민국운동이라는 섭리사에 전무후무한 반섭리 비원리적 운동을 전개했다. 참부모님의 섭리운동은 참사랑을 토대로 하나님을 중심한 올바른 이념과 가치관으로 공산주의, 물신주의, 퇴폐와 향략과 같은 비도덕적 사회를 일신하고 바로잡자는 것이었다. 종교를 초월하고 국가를 초월해서 평화세계를 이루자는 것이 참아버님의 기본 가르침이었고, 이를 토대로 이제까지 사회변화운동을 전개해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문국진 이사장은 무기경쟁으로 대한민국이 중국을 이겨야 한다는 반시대적 이론을 들고 나왔다. 이것이 참부모님의 평화운동이라고 이야기 할자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뿐만아니라 무모한 법적소송을 다국적으로 벌이면서 인류구원을 표방한 통일교회의 기치는 시궁창으로 처박혀야 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섭리 역행의 상황 앞에 일선지도자들은 뒤에서는 온갖 불평을 하면서도 앞에서는 침묵하고 동조해왔다. 식구들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면서도 무력하게 상황을 지켜 뿐이었다.

문국진 이사장의 해임을 소망하는 이유는 섭리가 바로잡히기를 원해서인 것이지, 그를 미워하거나 증오해서가 아니다. 어쩌면 그가 지금 물러나는 것이 그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문국진 이사장의 퇴진 소동은 모양새는 비슷한 것 같은데, 내용은 어째 그런 것 같지가 않다. 섭리를 바로잡기 위한 것인지 의문스럽다는 뜻이다.

참아버님 성화이후 지금까지 우리 앞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변화들이 과연 섭리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권력투쟁인지 분명함이 없. 이제까지 아버님 성화 이후에 드러난 것은 청평을 제외한, 재단과 협회의 소폭 인사 뿐이었다. 한편 피스컵 폐지, 성남일화 매각, 평화자동차 사업 중단은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 의심들게 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보면 현 통일교 지도부는 개혁의 필요성을 교회성장 즉, 식구수의 증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살아있는 교회는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종목표는 아니다. 우리가 섭리적 비전에 일치해서 나아가다 보면 숫자는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숫자에 치중하고 섭리적 방향성을 잃으면 늘어난 숫자도 하나님의 섭리와는 상관없는 그저 양적팽창에 불과하다.

세상에 교인 수가 많은 교회는 얼마든지 있다. 단일교회가 수만, 수십만을 자랑하는 교회들도 얼마든지 있다. 이들을 보게 되면 부러운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그들을 부러워 해야 하는가? 그들을 흉내내지 못하는 것을 반성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참아버님이 남겨 놓으신 레거시는 무엇인가? 아버님이 남겨 놓으신 말씀이 교인숫자 늘리라는 것이었나?

예수가 유대교 회당에서 유대교인 숫자가 적다고 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외쳤는가? 하나님의 섭리에 연결되어야 할 유대교가 그러지 못하고 화려한 예루살렘성을 자랑하고, 율법을 잘 섬기는 신앙을 자랑했을 때, 그들은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멸망되었다

아버님은 때가 되면 세상 사람들이 통일교회 담을 넘을 시대가 온다고 하였다. 사람 사태가 날 것을 예언하셨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우리가 세상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고, 평화의 세계를 이루면 세상은 우리교회에 들어지 못한 것을 한탄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아버님은 교인숫자에 연연하지 않으셨다. 필요조건이지, 이것이 충분조건이나,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아버님이 예산을 어디에 쓰셨는지 보면 알 수 있다.

교회성장론을 앞세우고 있는 현 통일교지도부를 바라보게 되면, 그들은 근본적으로 참아버님의 레거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된다. 아버님이 해 나오신 일들이 쓸데 없이 돈이나 쓰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이 부러워 하는 것은 서울시내 한 복판에 높다란 십자가 종탑을 세우고 있는 대형교회들이다. 회칠한 무덤들 말이다.


<새벽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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